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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산 Dec 05. 2023

아침의 운무雲霧

높은 일교차는 감기만 주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코를 킁킁대며 감기인지 몸살인지 컨디션을 바로잡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다. 긴 여름에 뜨거운 열기들이 해가 저물자 물러나가고 아침이 오기 전까지 차가움에 차가움이 더해지면 마침내 아침해가 떠올라도 지면은 쉽게 달궈지지 않는다. 그 밀고 당기는 경계에, 결국은 겨울로 가는 그 길목, 지면과 산등성이와 물결 위, 밤과 낮에 경계 위에 운무가 자욱하게 대기를 채운다.


서울에 살 때는 그 밀고 당기기의 소강상태 가운데에 가득 찬 공기가 무서웠다. 그 불투명한 대기 가운데 수증기 외에 무엇이 더 끼어 있을까? 그것이 호흡기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 어떤 장기에 들러붙어 가슴을 답답하게 할까? 최대한 숨을 참고 그 아침들에 종종걸음으로 안갯속을 통과하곤 했는데, 공기가 좋은 곳에 오니 산 등성이를 타고 도는 그 우윳빛 불투명한 기운이 신령스럽게도 느껴진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로 들어오면 이것이 바로 여름이 물러가는 기운이구나, 이 느낌이 겨울이다. 곧 겨울이 온다 하는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아마 옛날 사람들은, 이런 감각 속에서 의식하지는 못해도 겨울을 대비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할 계획을, 순차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서로운 풍경을 아름답다 느끼기보다는 어쩌면 엄준하게 받아들였을 것만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삶과 직접적으로 밀착해 있는 환경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니 말이다.


만화 ‘송곳’을 보면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 ‘라는 대사가 있다. 같은 사람이어도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태도가 변하는 것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돋보이는 말이다. 읽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인간이 얼마나 얄팍한가? 얼마나 나약한가를 말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게 해주는 비겁하지만 솔직한 ’어른’의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너머 산기슭에 가득한 운무를 보며 송곳의 대사를 떠올리는 것에 어떤 맥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무는 달리 보여도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해 보이니 몸이 딛고 선 땅이 달라져도 내가 서 있는 ‘곳’은 달라지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나는 변하기를 거부하는 ’덜 자란‘ 아이인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드는 아침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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