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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산 Mar 05. 2024

파묘

프로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파묘를 보고 어떤 부분에서 무척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내러티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캐릭터 때문이었는지는 두 번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파묘를 보고서 내가 떠올린 것은 <슬램덩크>였다. 정확히는 슬램덩크에 매료되었던 그 시절이라는 것이 보다 맞는 말이겠다.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원래는 사쿠라기 하나미치라는 것을 몰랐던 시절, 수많은 일본 만화가 한국에 유통되었다. 게 중에는 청춘물도 많았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 폭력물이랄지, <공작왕> 같은 오컬트물도 있었다. 나는 파묘를 보면서 그 만화들을 떠올렸다. 이야기의 원형을 떠올렸다기보다는 아베노 세이메이나 무사시보 벤케이 같은 캐릭터들이 떠올라 준지와 다이묘가 전혀 낯설지않았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너무 잘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후반부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후반부가 오히려 매우 훌륭한 오컬트 판타지였다고 생각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영화의 전반부의 이야기가 후반부에서 산으로 갔다고 말하는 의견이 있지만, 전반부가 우리가 어디에서 이 영화를 봐야 하는지 좌표를 찍어주는 부분이었다면, 후반부는 장재현 감독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고, 그 부분이 어색하지가 않아서,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다. 또한 후반부에 준지가 죽은 다이묘의 사체에 주술을 거는 장면은 어디에서 고증을 받았는지, 짧은 부분이었음에도 음악과 영상이 매우 인상 깊었다.   


일본의 주술呪術과 한국의 무巫가 격돌하는 장면을 이 정도로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 냈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화림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빛과 어둠, 음과 양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결국은 인간의 선한 의지가 어둠의 의도를 무위로 만든다는 이야기의 흐름, 곳곳에 배치된 감독의 순수한 의도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단순해지게 했다.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4명은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그들이라고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도깨비불에 잠깐 넋을 놓았어도,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눈앞에 위기를 헤쳐나간다. 프로페셔널한 태도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이 딛고 서있는 곳과 동지에 대한 책임감이 합쳐지니 근사한 어벤저스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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