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딘가에.......
작가는 피로 글을 쓴다고 했던가? 지난한 창작의 고통을 비유하여 한 표현이겠지만, 최명희 작가의 혼불은 마치 그 표현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말처럼 들리게 만드는 작품 '혼불'을 쓰고 세상을 버렸다. 아니, 작가는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았으리라,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남겨진 10권의 혼불이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청암부인의 죽음이라는 시대 전환의 암시가 3권에 배치되어 있다. 그 뒤로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가 7권 더 이어진다. 표현은 촘촘하고, 인물들도 여럿 등장한다. 그러나 청암부인이라는 구질서가 사라지고 난 공백 속에서, 구체제 질서 속에서 안온하였던 이들도, 새로운 시대에 출렁거림에 부단히 흔들리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자들도, 뒤틀린 시대에 혼돈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다분히 파괴적이고, 다분히 폭력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이 된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조금씩 모두 한 시대가 저물어 갔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 혼불 10권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혼불은 언어의 맛이 있는 소설이다. 마치 시나 판소리처럼 문장에도 운율이 있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고,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는 땅에서 자라난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이라는 자연과 인문이라는 환경을 반영하여 향토색이 짙다. 사투리의 음과 뜻을 모두 담아낸 문장은 그러나, 읽다 보면 결코 자연스럽고 쉽게 써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단어 앞에 이 단어를, 이 단어 뒤에 이 단어를, 밀고 당기면서, 넣고 빼고를 수없이 조율하면서 마침내 종이 위에 펜으로 글을 박아 넣은 작가의 의지가 오로지 쇠못처럼 박혀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 탄복하게 되는 것 같다. 비범한 의지와 끓는 듯한 열정이 일렁이는 푸른 혼불처럼 작품 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지금을 살고 있는, 읽는 이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다. 청암부인에게도, 강모에게도, 효원에게도, 강실에게도, 춘복이에게도 옹구댁에게도 그리고 8권에 갑자기 등장한 강호에게도, 좀처럼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쉽게 몰입하기는 어려웠다. 그 부분에서 시대적인 균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부분이 이 혼불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해야 할 이야기는 아직도 많이 남았다. 어쩌면 작가는 혼불이라는 작품을 온전히 밀봉하여, 타임캡슐이 열리 듯, 어느 시대엔가 이 이야기가 반드시 필요할 때에 쓰일 것이라고 믿었을까? 다만 지금은 그때가 아닐 뿐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