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견(1045-1105), <송풍각시권>

시인의 서예는 시인을 닮는다.

by 검은 산

황정견은 북송시대에 흘러넘쳤던 새로운 학문의 지향, 문학의 추구, 예술적 분위기 속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과거를 통해 관직을 역임한 관료이자 사대부였지만 동시에 시인이자, 서예가이기도 했다. 그의 시는 그의 성격처럼 차마 쉽게 변할 수 없고, 깊이 사유하는 정신의 결과물로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여 영향을 받았는데, 황정견의 시풍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강서시파江西詩派라고 불렀다. 북송이 금나라에 멸망한 후에도 그의 시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황정견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소식이었다. 그는 소식보다 6살이 어렸는데, 먼저 편지를 보내 자신의 마음을 전했고, 평생 소식을 존경하면서 정치적인 입장과 예술적인 견해, 시대의 고락까지도 함께 했다. 황정견도 소식처럼 서예를 학습하면서 안진경을 배웠고, 소식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시가 소식의 <적벽부>처럼 과거와 현재, 신선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드는 드넓음과 같지 않은 것처럼 그의 서예도 좀 더 맑은 물이 흐르는 고요한 세계,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와도 같은 세계로 홀로 나아갔다.


한 사람이 평생 추구해온 세계를 한두 점의 작품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득의작得意作’이라고 해서 창작자조차도 다시 재현해 낼 자신이 없는 작품이 있는데, 우연과 필연이 만나 운명이 되는 순간에 탄생한 득의작은 때로는 작가의 의도보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 황정견 서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은 <황주한식시권발黃州寒食詩卷跋>과 <송풍각시권松風閣詩卷>이라고 할 수 있다. <황주한식시권발>은 소식이 쓴 <황주한식시권>을 보고 황정견이 자신의 소회를 적은 내용이다. 지우知友로서 소식 서풍의 근원이 어디인가를 적고 있어, 소식과 송나라의 글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록이다. 이 작품은 시대의 비평가로서, 그리고 기록자로서 황정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그에 반해 <송풍각시권>은 자신이 지은 시를 직접 쓴 작품이다.


<송풍각시권>은 당쟁이 지속된 가운데에, 유배를 반복하던 황정견이 오랜만에 유배에서 풀려나, 호북성 악성현에 있는 번산樊山을 거닐다가 산속에서 누각을 발견하고, 이 누각의 이름을 송풍각松風閣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여 시를 짓고 직접 썼는데, 그것이 이 작품 <송풍각시권>이다. '동파도인(소식) 이미 세상을 떠났고, 장뢰는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으려나... 언제쯤 이 몸은 벼슬에서 풀려나, 벗들을 배에 태우고, 주유舟遊할 수 있으려나............' 시에는 유배에서 풀려나 자연을 만끽하는 여유와 은은한 기쁨이 느껴지는 한편으로 먼저 간 사람과 보고 싶은 그리운 이름을 부르고 있다.


황정견의 작품 <송풍각시권>을 보고 있으면, 여러 인물들의 글씨가 보인다. 안진경도 보이고, 소식도 보이며, 장욱, 회소(懷素, 725 - 785), 고한(高閑, ? - ?)의 글씨도 보인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는 왕희지의 글씨도 보인다. 황정견의 글씨를 조각조각 내서, 어떤 부분은 안진경의 몫이고, 어느 부분은 왕희지의 부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어느 인물과도 똑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손과정의 말처럼 서예는 뛰어난 선인들의 글씨를 보고 반복해서 따라 쓰면서 나아가는 예술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처럼 일정한 양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만 내 것을 가질 수 있다. 황정견은 내 것을 가진 사람이다. 시는 소소한 기쁨과 잔잔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지만, 글씨는 커다란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처음 붓이 종이를 만나는 순간부터 일획, 일획은 망설임이 없이 내달린다. 고요한 가운데에도 거침이 없는 것, 가지런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 시인의 글씨는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을 모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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