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금체에는 나라의 멸망이 담겨 있지 않다.
대만에는 국립 고궁박물원이라는 거대한 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장제스가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물러나올 때 옮겨 온 수십만 점의 문화재를 수장하고, 연구하며, 전시하는 곳이다. 일설에는 옮겨오기 쉬운 서화류의 작품들이 주된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국립 고궁박물원에서, 2006년 ‘대관大觀 - 북송北宋시대’ 전을 열었었다. 대관은 북송의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 휘종徽宗의 연호 중 하나이다. 이때 공개된 유물을 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었다. 종이장 같은 두께와 사파이어보다 더 아름다운 푸른색의 여요汝窯 청자, 교과서에서나 봤었던 조춘도, 눈이 휘둥그레져 작품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제발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여러 날에 걸쳐서 전시를 보았었다. 물론 그때도 서예 전시실은 다른 전시실보다 상대적으로 한산해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전시실에는 소식, 황정견, 미불, 채양 같은 북송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작품이 있었음에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공교롭게도 휘종의 작품이었다.
역사가들이 송나라의 휘종을 평가할 때, 황제가 되지 않았다면 좋았을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휘종의 행보를 봤을 때, 아마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휘종은 왕안석을 중용하여 정치 개혁을 추진했던 신종의 아들이다. 하지만 신종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형인 철종이 후계자 없이 갑작스럽게 죽자, 신종의 남은 아들들 사이에서 여러 정치적인 조건들의 줄다리기 끝에 결정된 대안이었다. 그는 25년 동안 황제로 살았는데 실질적인 북송의 마지막 황제로 오랑캐들에게 끌려가 번화하고 화려했던 수도 개봉이 아닌 척박한 북쪽 땅에서 포로로 죽었다.
준비 없이 황제가 된 휘종을 리더로서만 평가한다면 그는 망국의 군주로 비판받아야만 마땅하다. 그러나, 예술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라의 역량을 결집시켜 역사에 길이 남겨질 유산을 남기기도 했다. 대관첩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서예와 회화작품을 모각하여 출간한, 선화서보宣和書譜, 선화화보宣和畫譜는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휘종과 황실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움의 특징은 장식적인 정교함과 화려함이라고 할 수 있다. 휘종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서학도>, <도구도>를 보면 휘종이 추구했던 아름다움이 어떠한 모습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휘종이 썼던 서書도 그랬다. 사람들은 휘종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 이 글자들을 수금체瘦金體라고 불렀다. 뜻은 수척한 쇠 같은 모양이라는 뜻인데 글자를 보면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알 수 있다. 마치 <서학도>의 학을 그리듯 붓 끝에 힘을 정교하게 조절하여 써 내려가는 이러한 서체는 그린 듯 하지만, 실제로 구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높은 수준의 테크닉의 결정체라고 표현해야 할지 심히 고민이 되는 휘종의 서예는 동시대의 소식, 황정견, 미불, 채양과 같은 이들이 가는 길이 전혀 다르며, 그 이전 시대의 왕희지, 안진경과도 같지 않다.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천자天子’ 다운 글씨라고 해야 할지, 보석과 비단을 두르고 높은 단 위에서 법도와 전례에 따라 사는 황제의 삶을 닮은 글씨라고 해야 할지 고민은 되지만, 한번 보면 결코 잊히지 않는 존재감 강한 서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휘종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휘종의 서예는 분명히 아니다. 청명절, 북송의 수도 개봉開封의 모습을 그린 장택단의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 야 말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5미터가 넘는 이 긴 작품은 물자와 사람들이 모여드는 번화하고 활기찬 개봉의 모습을 담고 있다. <청명상하도>는 태평성세太平聖歲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이후의 여러 왕조에서 반복적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이 그림이 그려진 시대는 간신록에도 이름을 올린 채경이라는 인물이 휘종이 좋아하는 희귀한 꽃과 나무, 동물들과 값비싼 물품들을 여러 지방에서 백성들을 착취하여 개봉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막대한 국고가 여기에 투입되었으며, 채경이 속닥이자 기꺼이 백성의 삶에 눈을 감은 휘종의 사치스러운 취미는 국가의 기반을 갉아먹으며 실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청명상하도>에는 그런 모습은 읽어낼 수가 없다. 수금체로 쓴 휘종의 글씨도 그렇다. 이 아름답고 정교한 서체에서는 나라의 쇠퇴와 멸망의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는다. 역사를 알지 못했다면, 휘종의 수금체 작품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라고만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알면 이 작품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수금체를 보아서는 북송의 멸망을 예감할 수 없지만, 북송의 멸망에서는 휘종의 수금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