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불(1051-1107), <촉소첩>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연습하면 내가 된다.

by 검은 산

송나라 때에 손꼽히는 서예가 중에서도 미불은 조금 독특한 존재이다. 무엇보다 그는 서書에 진심이었다. 같은 시대의 소식이나 황정견이 서에 진심이 아니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미불은 서 그 자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대문장가인 소식, 시인 황정견은 가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미불에게는 있었다.


미불은 중국 역사상 가장 예술적인 황제인 휘종의 시대에 서학박사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휘종은 그를 불러 당대 서예로 이름 난 이들을 평가하도록 하도록 했다. 그는 황실의 작품들은 물론, 좋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수장가가 있다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여러 날 머물며, 작품을 감상하고, 직접 베끼면서 완전히 습득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똑같이 베낀 작품 중에 가짜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진품은 자신이 가졌다고 하는데, 이는 범죄 행각이나 다름없었지만, 수장가는 회수해 가는 작품이 가짜인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은 미불의 예술에 대한 탐욕과 실력을 보여준다. 전해지는 이런 이야기들이 실제인지는 모르지만, 그에게는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의지와 실력이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미불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한다면, 길이가 3m에 달하는 <촉소첩蜀素帖>(1088)을 들 수 있다. 이 첩의 이름인 촉소는 촉지방에서 만들어진 비단이라는 뜻으로, 1044년에 만들어진 비단을 얻은 주인은 수십 년간 보관해 오던 이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을 서예가로 미불을 선택했다. 38살의 가을, 미불은 촉소에 자신의 시 8수를 써내려 갔다. 명나라의 예술가 동기창은 이 작품을 보고 '사자가 코끼리를 쫓는 듯하다.'라는 평가를 남겼는데, 예나 지금이나 비평가의 말은 어렵다.


38살이면 서예가로 전성기에 올랐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나이지만, 이 작품이 미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미불의 시그니처인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글자의 형태가 이미 완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과 2.7m를 써 내려가는 붓에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 안에는 그의 자신감과 자존감, 에너지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미불은 천재였는가? 물론 그에게는 범인에게는 없는 예술적 재능이 충만했다. 그러나 미불은 천재는 아니었다. 천재는 소식 같은 인물을 두고 하는 말에 더 가깝다. 미불은 휘종의 명으로 병풍에 글씨를 쓴 적이 있는데, 자신의 작품을 넋을 잃고 보면서, 혼잣말로 '이왕二王(왕희지, 왕헌지)의 잘못을 씻어내고, 황궁을 만고에 빛나게 했노라'라고 읊조렸다고 한다. 이렇게 미불은 천재라기에는 자신의 예술을 너무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다만 열심히 보고, 쓰고, 읽고, 분석하고, 다시 썼던 정말이지 열심히 살았던 인물이었다.


기록에 미불은 지독한 결벽증을 가지고 있고, 특이한 바위를 보고는 절을 하기도 하고, 자기가 죽을 날을 알고 이를 준비했다는 인물이지만, 이러한 기이한 이야기 너머, 진짜 미불은 자신의 재능을 믿고, 그 재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전부 불태웠던 인물이었다. 기이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기억하든, 당대 최고의 진위를 판별하는 감식가이자, <해악명언海岳名言>을 쓴 서예 이론가이자, 미법산수를 만들어낸 화가로 기억하든, 미불은 미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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