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순응한 사람은 새로움을 말할 수가 없다.
조맹부는 몽골족이 송나라를 무너뜨리고 중원에 세운 나라, 원나라에서 높은 관직을 지낸 관료이자, 그림은 물론 글씨도 잘 썼던 다재다능한 인물로서 그의 아내 관도승管道昇도 그림을 잘 그려 부부가 모두 예술가로서 유명했다. 또한 조맹부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데, 고려시대 충선왕이 중국 연경에 지은 만권당을 통해 고려의 이제현 등의 여러 문인들과 만남을 가졌고, 이 두 세계의 만남은 고려는 물론 조선시대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맹부는 송나라의 황족으로 남송 시대에 태어났다. 그는 나이 26세 때 남송은 멸망했고, 33세 때에는 남송을 멸망시킨 원나라에서 황제의 총애를 받아 관직에 오르고, 오랜 세월 부귀영화를 누렸다. 원나라를 세웠던 몽고족들은 멸망한 남송의 유민들을 혹독하게 차별했으며 억압하고 착취했다. 또한 과거 제도를 폐지해서 문인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관직을 얻을 수 없어 그림을 그려 팔거나, 점을 쳐주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많은 사대부들이 원나라 조정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한평생 야인으로 사는 삶을 선택했다. 또한 백성들도 차별과 가혹한 세금, 몽고족들의 폭정에 삶이 고단했다. 100년 남짓 원나라가 유지되었던 기간 동안 그 억압의 강도는 조금씩 느슨해지기는 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각지에서 폭정에 저항하는 반란이 일어나 시대는 혼란하기만 했다.
조맹부 서의 특징은 소식, 황정견, 미불과 같은 송나라의 사대부들에게 영향을 받기보다는, 동진 시대의 왕희지에게 더욱 다가가려 했다는 점이다. 조맹부는 40대에 우연한 기회의 <정무난정서定武蘭亭序>(구양순이 임모한 <난정서>)를 선물 받고, 수백 번씩 반복해서 쓰며 왕희지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조맹부는 마치 당나라 태종이 그랬듯, 왕희지의 서를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그 시대에 많은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던 조맹부의 주장에 사람들이 동조했고, 다시금 조맹부가 해석한 왕희지 시대가 왔다.
조맹부의 서를 후대에 사람들이 평가할 때, 너무 옛날 사람인 왕희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중간다리로서의 조맹부 서를 높이 평가한다. 그 외에는 우아하다는 말에 동전의 양면처럼 유약하다는 평가가 덧붙여진다. 조맹부의 서를 평할 때 ’왕희지‘, ’우아하다‘, ‘유약하다 ‘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는 서예를 잘 썼다. 그 시대에 해서楷書로는 최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삶은 대다수의 남송 유민이나 문인들하고는 달랐다. 그의 서를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그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보는 순간 말문이 막힌다. 서여기인이라고 했는데, 그의 서는 그의 삶의 어떤 면을 담은 것인가? 조맹부는 왕희지의 권위를 빌지 않고서는 스스로의 힘 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똑바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현묘관은 중국 소주성 내에 현존하는 유명한 도관이다. 원나라 때에 이 도관의 전당과 삼문을 중수하면서 그 내력을 적은 비문을 2개 세웠는데 이때 글씨를 쓴 사람이 조맹부였다. <현묘관중수삼문기玄妙觀重修三門記>는 그의 나이 49세에서 56세 사이에 쓴 글씨로 추정된다. 이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조맹부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여러 사람들의 흔적이 겹쳐 보인다. 송나라의 황족이었으니, 황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사대부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가장 클래식한 작품도 분명 익혔을 테니 왕희지와 안진경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조맹부 자신도 왕희지에게 다가갈 관문으로만 평가받는 것에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에 조맹부의 글씨가 크게 유행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조맹부의 글씨를 배웠다. 그러다 사림들이 등장하는 15-6세기가 되면 조맹부의 글씨는 부정당한다. 석봉 한호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다시 왕희지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조맹부는 지조를 지키지 못한 변절자로 비판받으며, 그의 글씨는 버리고 벗어나야 하는 것이 된다. 이런 상황은 중국에서도 비슷했다.
명청 교체기에 팔대산인이라는 화가가 있었다. 그는 명나라 왕족 출신인데, 청나라가 들어서자 새로운 질서를 거부하고 스스로 미친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의 그림은 읽어내기가 어려울 만큼 어지럽지만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한 화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애쓴다. 스스로 떳떳할 수 없는 사람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가 아무리 옛사람의 권위를 빌어 온다고 해도, 그 권위와 정당성은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