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상_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붙여

시를 읽다.

by 검은 산

시를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를 읽으면 의미와 상像이 작가라는 필터에 걸러져 압축되고, 원래의 뜻과는 다른 함의와 은유를 내포하는, 전혀 다른 언어의 세계에 떨어져 때때로 포위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복잡한 선택들 앞에선 현실의 비루한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 어떤 향긋한 냄새가 시에서 흘려 나와 돌연 정신을 또렷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것이 싫다.


2024년 12월, 갑작스러운 계엄령이 떨어졌다. 계엄령은 80년 광주를 소환한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증언하고 이야기했지만, 나에게 80년 5월의 광주는 무장한 군인이 시민을 곤봉으로 내리치는 곳이었으며, 길가에 시민의 시신들이 늘어져 있는 곳이었다. 5월의 백주대낮에 국민과 국토를 지켜야 하는 군인이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짓밟고 죽이고 모욕하고 고립시켜 은폐하려 했던 곳이다. 불과 44년 전에……


2024년 12월, 한강 작가가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를 기념해서 스웨덴에서 강연을 했다. 그녀는 이 강연을 통해 자신의 작품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를 말했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광주에서 벌어진 그 잔혹하고 끔찍한 폭력 앞에서 인간으로 남기를 선택했던 사람들에 대해 쓰는 순간에 느꼈던 고통을 독자들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는 언어를 통해 우리가 이어져 있음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소년이 온다’를 완독 하지 못했다. 기실 광주를 다룬 그 어떤 드라마와 영화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미 몇 장의 스냅사진 만으로도 광주는 시와 같았기 때문이다. ‘소년이 온다’도 그렇게 시와 같았다. 한 문장을 읽으면 그 모습이 생생히 살아났다. 5월의 뜨거운 열기, 초가 타는 냄새, 체육관의 냄새, 소년의 땀 냄새, 피냄새, 그리고 죽음의 냄새…… 담담히 기술되지만 마치 소년과 소녀의 코 앞에서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문장을 도저히 마지막까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 불과 15~18세에 불과한 그들의 삶이 곧 꺼질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그들의 말과 행동이 점차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 같아서 도저히 도저히 다음장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간신히 한강 작가의 강연록을 끝까지 읽었다.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사랑, 우리, 끝내, 인간, 남다. 그 어느 것도 쉽게 이해되는 단어가 없었다. 그러나 단어가 문장이 되는 순간, 이해를 넘어서 어떤 냄새가 풍겨난다. 이 냄새를 안다. 시의 냄새다. 부여된 의미, 고통으로 만든 상像이 그 안에 스며들어 있다. 80년 광주에서 잃었던 생명들을, 2024년 서울에서는 지켜낼 수 있길 바라며, 한강 작가의 질문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