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없는 생존
황량한 들판에 굴러다니는 바싹 마른 잡초, 종도 다르고, 굴러다니는 들판도 모두 다른 그 다양한 풀들을 통칭해서 회전초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부 영화나 로드 무비에서 볼 때마다 그것이 풀의 사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버린 풀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뿌리가 없다?! 그런데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은 이다지도 편견도 금제도 없는데, 왜 나는 그동안 이것도 되고, 저것은 안되고,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라고만 생각했던 것일까? 그야말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다.
살면서 이렇게 미처 몰랐던 것을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이런 사실을 예전에 알았다면 나의 인생은 지금과는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깨달음도 타이밍이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며,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은 지금은 이해가 필요 없이 바로 깨닫음으로 달려가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 올린 시간 속에 감당했던 사건들에서 얻은 경험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예술은 좋다. ACC에서 진행 중인 ‘봄의 선언’이라는 전시를 보고, 회전초에 대해 알게 될지 어찌 알았을까? 거기 있는지도 몰랐던 편견을 또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으면 언젠가는 텅 비어 바람보다 더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상상을 하다 보니 마치 바람 따라 건조한 흙먼지 속을 굴러다니는 뿌리는 없어도 하염없이 자유로이, 생명의 가장 본질 ’ 생존‘에 충실한 회전초가 된 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