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읽다.
단골가게에 갔더니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늙고 병들어 보였지만, 주인의 애정 때문인지 뽀얗고 깨끗한 것이 미물이지만 귀해 보였다. 보통은 무심히 넘어갔겠지만, 그 고운 상태의 주인공이 궁금해 주인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춘삼'이라고 했다. 고운 할머니처럼 보여서 암컷이라고 짐작했건만, 생각지 않게 수컷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소하고 말았다.
'춘삼'...... 고운 자태에 일견 어울리지 않은 촌스러운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3월에 태어나서 춘삼인가? 아니면 봄날처럼 생명이 그득하게 피어오르는 계절에 태어난 것을 기억하기 위해 지은 이름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읽어보지 못했거나, 보지 못했던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이름일까? 그것도 아니면 부르는 어감이 좋아 문득 지어준 이름인가?
명名을
[상용자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廟]에 가서 제육祭肉을 바치고 축문을 올려 아이의 성장을 고하는 명名(肉+축문 그릇 재)이라는 의례를 진행한다. 이때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이름', '이름을 붙이다'라는 뜻이 된다. 고 해석했으며, [한자어원사전]에서는 명名을 저녁 석夕+입 구口라고 구성된 글자로 밤에 입으로 부르는 것으로부터 '이름', '이름을 부르다'라는 뜻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명 앞에 오汚를 붙이면, 오명이 되며, 악惡을 붙이면 악명이 된다, 그에 반에 뒤에 예譽를 붙이면 명예가 되고, 망望을 붙이면 명망이 된다. 명은 가치중립적이다. 하나의 개체를 독립된 존재를 규정하지만, 그 개체가 오명을 얻을지 명예를 얻게 될지는 오직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렇게 이름은 히스토리가 된다. 예쁘고, 안 예쁘고는 그저 소소한 일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결국 이름에 담긴 뜻을 넘어서 그 명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삶을 살기도 한다.
춘삼이라는 이름을 사람에게 붙인다면, 옛날에는 아마 마당 쓰는 노비에게나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얼마 안 되는 가늘고 하얀 털을 가진 그 강아지를 보고 있자니, 그 이름 또한 왠지 귀하게 느껴진다. 인간만이 선택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 귀해질 수도 천해 질 수도 있다 여겼는데, 그 강아지 또한 주인과 한량없는 사랑을 주고받으며 한 생을 충만하게 보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춘삼이라니 이름이 참으로 귀하게 느껴진다. 춘삼이는 명命을 다하는 날까지 아마도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