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이 말은 마태복음 22장 15절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던진 질문에 예수가 이들의 의도를 간파하고 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었을 때, 세상과 연결할 때도 유효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를 만나거나, 연애를 하거나 가족 간에 우리는 상대의 감정, 판단, 기준에 영향을 받게 된다. 좋은 영향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가깝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상대의 기분, 판단, 기준을 자신을 것으로 착각하고 비판 없이 수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미디어에서 얻은 정보도 마찬가지다. TV,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같은 SNS에서 유통되는 대량의 콘텐츠를 쉽고 간편하게 소비하면서, 점점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매체에 종속된다. 유튜브에서 나온 언어, 상품, 장소 등이 갑자기 중요해지고 필요해진다. 그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돈, 시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아니면 불안해진다.
관계와 정보는 쉽게 우리를 압도한다. 우리는 나의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것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을 어려워 하고, 애초에 그것이 가능한지 곧잘 의심하곤 한다. 그러나, 나와 세계 사이에는 분명히 선이 존재하고, 그것을 긋는 것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그들의 감정과 판단은 그들에게 돌려주고, 나의 것을 갖기 위한 노력,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어떨 때 기쁜지 슬픈지, 어디로 가고 싶고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는 질문과 답하려는 노력을 통해 조금씩 그 선은 선명해지고,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된다. 타인의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수용하기를 그만하면 처음에는 외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알게 된다. 나 자체로 온전하고 완전한 하나의 세상이라는 것을, 내가 기대했던 모습은 아닐지라도....
돌려줘라, 세상의 셀 수 없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내 것은 온전히 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