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인의 삶
연초 연말에는 다가올 신년 운세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쉽게 살아지는 해가 별로 없었음에도 사람들은 내년의 희망을 보기 위해 신년 운세를 본다. 토정 이지함 선생은 고된 삶을 사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내용으로 토정비결을 지었다고 하는데, 보통의 백성들은 그것만으로는 늘 부족한 거 같다.
사실 사주명리학 등등은 왕을 포함한 왕실을 위한 학문으로, 일반 백성들은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는 안 되는 그런 세계였다. 대부분 태어난 곳에서 부모와 같은 일을 하다가 죽는 백성들에게 명리학이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일력을 구하는 일조차 어려운 이들에게 태어난 해와 달, 일, 시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명리학이 현대에 들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고, 막대한 시장을 형성할 것을 예전의 관상감 관리들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운명은 있나? 미리 알면 화는 피하고 복은 온전히 누릴 수 있나?, 근데 이걸 누가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을까?! 금방 신내림을 받아 신빨이 따끈따끈하다는 애기무당, 사주 봐주는 명리학자, 아니면 운세 사이트? 글쎄…..그런 사람들이 말해주는 몇 마디 말과 몇 줄의 글이 과연 나의 운명을 혹은 나의 한해를 온전히 해석해 줄 수 있을까?
나는 편인이 강한 사주이다. 정인의 반대, 편벽된(치우쳐진) 인성이란 의미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오타쿠 같은 성격을 가진 자이다. 한 가지 것에 골몰하면 밤낮을 안 가리고 몰입했다가, 식어버리면 그냥 놔버리는 꾸준하고 성실한 기질은 아닌 것이다. 조선시대 같으면, 출세하기는 글러버린 사주이다. 양민이 담당한 농사는 일 년 365일 루틴이 정해진 일이고, 양반이 할 수 있는 관리 사회는 그야말로 정해진 법식을 벗어나면 팽당하기 십상이다. 노비는 어떤가? 주인의 명을 기분 내키면 따르고, 안 내키면 안 따를 수 있는가?
그러나 지금이라면 어떤까? 한 가지에 천착하는 것은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자질이 될 수도 있다. 한 가지만 잘해도 남의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남이 뭐라든 나의 만족과 기분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 중에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적지 않다. 이런 세상의 변화는 명리학의 운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인가?! 우리가 돈을 내고 절실하게 듣고 있는 그 내용들이 이 시대와 나에게 정말 맞는 해석인지, 그것을 믿기 전에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겁을 주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을 차분히 바라보자. 당신이 살아온 삶이 그렇게 간단했던가? 당신의 경험이 그렇게 가벼웠던가? 명리학은 해석하는 자의 식견에 많은 부분 기대어진다. 그런데 나의 삶을 나만큼 잘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경계해야 할 것은 마땅히 경계하고, 좋은 이야기는 기운 날 만큼만 듣자, 나머지는 나에게 달렸다. 이것은 나의 운명, 나의 삶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