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예사에 대한 작은 글小稿
'서書’의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낯선 일이다. 마치 라틴어처럼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한문漢文이 '기록한다'라는 기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는 예술이 되었는지, '서'가 예술이 되기까지 어떤 인물들의 역할이 있었는지, 그들이 탄생시킨 작품들은 무엇인지 되짚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가끔 어떤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냐라고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또 이 작품은 어떤 점에서 좋은 작품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 지곤 한다. 왜냐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전공자들이 쓰는 언어로 말하다 보면, 어느새 듣는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봤을 때 좋다고 느끼면 좋은 작품일 것이라고 답하곤 했다. ‘너는 말해도 모를 거야’라고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이렇게 모호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 과거의 서예를 현대와 소통하게 할 언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예를 공부하면 할수록, 얻는 지식과 깨닫음이 생길수록 그것이 그저 개인의 만족이나 소수의 전공자들만이 알고 마는 죽어버린 지식이 되고 말 것만 같아서, 그냥 있다가는 아무도 모르게 그냥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문자의 탄생 이래에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제 더 이상 사람을 왕, 귀족, 사대부, 평민, 노비로 구분 짓는 시대도 아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문자를 읽고, 쓰는 시대도 저물고 없다. 그래서 어쩌면 더 서예 속에서 지금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기대가 한편으로는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래와 위의 구분도 모호한 잭슨 폴락에 액션 페인팅에 찬사를 보낸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담긴 수많은 상징들과 비극적인 역사적 배경에 깊은 관심과 동질감을 느낀다. 이렇게 작가 ‘액션’의 결과로 만들어진 그 추상적 세계를 들여다볼 용기가 있다면, 시대와 만나 공명하는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 서 있을 열정이 있다면 서예 작품에 깃든 아름다움에도 충분히 공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잭슨 폴락, 피카소가 어떤 사람인가를 안다면 그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글이 서예사에 아로새겨진 선명한 이름들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한 안내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