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진보古文眞寶>라는 책이 있다. 송나라 때 황견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데, 누군지는 불분명하다. 이 책은 일종의 선집으로, 중국의 전국시대 때부터 중국 송나라 때까지 중요한 문장들(산문, 시 등)을 선정하여 편집한 책이다. 이백, 두보, 한유, 소식의 문장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지은이나 제목은 몰라도 한 줄이라도 들으면 아는 그런 문장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고려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글 좀 안다는 사람들은 이 책 전체를 통째로 외워가며 공부했다.
이 책의 제일 첫 번째 수록문이 <권학문勸學文>이다. '학문을 권하는 글'이라는 의미로 송나라의 진종眞宗이라는 황제가 쓴 글이다.
富家不用買良田 書中自有千種祿
安居不用架高堂 書中自有黃金屋
집을 부하게 하려고 좋은 밭(田) 사지 말라. 책 속에 저절로 천종의 봉록이 있다.
편안히 살려고 큰집을 짓지 마라. 책 속에 저절로 화려한 집 있다.
出門莫恨無人隨 書中車馬多如簇
取妻莫恨無良媒 書中有女顔如玉
문을 나설 때 따르는 사람 없다 한탄 마라. 글 속에 거마가 떨기처럼 많다.
장가 들렸는데 좋은 중매(仲媒) 없다 한탄 마라. 책 속에 얼굴이 옥 같은 여자가 있다.
진종의 글은 누구나 실현하고 싶은 명예와 부를 들어 책을 통해 얻는 것을 비유한다. 그것이 동기와 열정을 촉발시키기 위한 의도이든 아니든 간에, 글을 읽는다는 행위에는 더 많은 권력과 명예, 부와 성공을 이루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이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인스타 피드에 등장하는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었다는 목록이 등장하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책을 많이 읽었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성공했다’라는 기준은 대게 자산이 얼마고, ceo라고 하는 타이틀이다.
성서에는 읽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문구가 많고, 공맹의 도가 적힌 경전은 펼치기만 해도 군자가 될 것 같고, 아름다운 단어와 정서가 엮인 시는 읊는 것만으로도 속세와 작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 조선시대에는, 책에 매여 상대를 비난하고 나아가 죽이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럴 때 책에 담겨 있는 지식은 파워게임의 도구가 될 뿐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성공한 사람이 되는가? 그 ‘성공’은 어떻게 규정되는가? 진종이 말하는 대로, 인스타 성공학 피드가 말하는 데로 어쩌면 책을 많이 읽으면 성공한 사람이 될 수는 있겠다. 봉건주의 사회에서는 높은 지위와 명예를 누리고,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돈과 권력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책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것을 규정할 때, 세상이 흐름에 끄달려 가지 않을 의지가 있다면, 책은 수많은 있을지도 모를……‘성공’을 규정할 수 있는 힌트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공하지 못해 뒤처져 홀로 남거질 거라는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할 때, 위로와 공감을 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