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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산 Jun 29. 2023

playlist_fly me to the moon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악이 다르고, 좋아하게 된 계기도 각각이겠지만, 나에게 재즈라는 음악을 알게 해 준 것은 애니메이션 ‘신세계 에반게리온’이었다. ost 중에 ‘fly me to the moon’이라는 음악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재즈와 조우했다.  


달콤한 목소리의 여성이 부르는 이 곡을 들었을 때, 도대체 이 음악이, 이 기괴한 애니메이션과 무슨 상관인지 이해하지 못해 열심히 들었다. 끝까지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나에게 이 노래는 지식이 아니라 감각으로 각인되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다시 재즈를 듣게 됐을 때 비정형적이고 즉흥적이며 음악인지 읊조림인지 모호해지는 경계선에서, 달빛 속에서 유영游泳하는 레이를 떠올렸을 때였다. 이해하지는 못했었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이, 감각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그렇게 곧장 날아가는 그런 통로가 생겼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레이처럼 무한한 공간을 떠다니는 듯한 감각에 침잠하면서 평화로움을 느꼈을 때, 나는 레이를, 작품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 한소리 듣기는 했지만, 그때의 시간들 속에서, 나는 다른 이들은 대신해 줄 수 없는 기억들을 쌓아가면서 그렇게 내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인지, 그때도 지금도 잘 알지는 못하겠다.    


오랜만에 다시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를 음미해 본다. fly, moon, star, kiss, adore, love, worship 같은 단어들이 달콤하기 그지없지만 가장 귀에 남는 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in other words’라는 부분이다. 달콤한 단어들로 나열한 사랑의 마음을, 열망하는 마음은 역시나 '달에 데려다줘요', '저 별들 사이로 여행 가요'가 아니라 'in other words, I love you'라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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