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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산 Jun 24. 2023

회의주의자_ not good enough

얼마면 돼????!!!

예전에 유튜브에서 https://youtu.be/Eu_Gl0woeOw​ ​ 이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6분 간 이어지는 십 대 소녀의 스피치는 연습을 통해 끊김 없이 이어진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오래 시간 농축되어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소녀의 말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not good enough’이라는 단어가 오직 또래 집단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사춘기 십 대 소녀만의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student’s viral poem  asks ‘why am i not good enough’

‘not good enough’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충분하지 않다’ 혹은 ‘부족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이 우리는 이 말을 친밀한 사이나, 혹은 낯선 이에게 들었으며, 심지어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것을 들었던가?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서 자신을 온전히 인식하기 이전부터 세상은 역할을 부여했고, 비교했으며, 평가했고, 거기에 따른 보상과 벌을 주었다.  어떤 이는 승자라고 불리고  어떤 이는 패자라고 조롱받는다. 하지만 승자라고 우월감을 느낀 사람도, 패자라고 좌절한 사람도, 과연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에 100% 만족할 수 있을까?! 승자는 승자로 남기 위해, 패자는 다시 승자가 되기 위해 또다시 역할을 부여받고, 비교하고, 평가한다. 이 과정은 마치 다람쥐가 돌리는 쳇바퀴와 같은 형국이다.


얼마가 되면 ‘enough’할 것인가? 도대체 어느 정도의 부와 명예, 권력이 있으면 우리는 충분하다고 느낄 것인가?! 충분이라는 것은 느낌이다. 절댓값이 없어 어제는 충분한 것 같아도, 내일에도 충분하게 느끼리라는 보장이 없다. 충분을 찾아 헤매며 더 허기지고 더 배고플 뿐이다. 그리고 그 허기는 종래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미워하게 한다. 아니 똑바로 볼 용기를 빼앗아 버린다.


‘good enough’ 앞에 ‘not’을 붙이지 않을 용기와 단호함을 갖기 위해 우리는 좀 더 자신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여된 역할을 너무도 오랫동안 수행해 온 존재가 ‘자신’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인가는 장담하기 어렵다. 저 소녀처럼, 자신에게 들러붙은 외면의 목소리가 내면에 자리 잡아 마치 자신의 진짜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을 애써 뿌리치고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우리는 겨우 나 자신이 되어가는 길에 접어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먹어도 먹어도 부족함을 느끼는 이 끝없는 공허라는 허기에서 조금쯤은 놓여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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