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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이미 Feb 29. 2024

 목련은 지고 또 핀다

  남쪽 바다를 끼고 출근하는 시간은 축복이었다.

아침해가 조용히 떠올라 만물을 키우고  바다를 비추는 금빛  물결도 아름다웠다.

 날씨가 흐려서 비가 내릴 때의 모습도  그 나름대로 운치도 있고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다.

 안개가 자욱이 교실을 휘감으면 우린 모두 천상에 있는

선녀가 되고 신선이 된 듯한 착각을 자주 하곤 했다.

자연 환경처럼 사람도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인가?


 다음날 교감 선생이 정주를 불렀다. 정주는 학교에서 교무기획 (2)로 업무분장이 되었었다. 여러 가지 업무 중에서  교감 선생이 학교일지를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그날은 수업이 연달아 있어서 아직 기록 완결을  하지 못한 상태였으나  정주는 즉시 일어나 학교일지를 가져다 드렸다.

 

 그러자 교감 선생은 안경 너머 실눈으로 학교 일지를 쭉 훑어보더니 갑자기 의자를 정주 쪽으로 밀면서 다가와서   "학교에 그런 나비 달린 치마를 입고 와서 누굴 꼬시려고? "하면서 음험하게 미소를 머금는 것이었다.


 정주는 순간 기분이 나빴다. 학교 일지 즉 업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것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주 입은 옷은 그런 옷이 아니었다. 정주의 부모님도 선생님이셨기에 남을 꼬시는 옷을 입을 수가 없거니와 남을 꼬시는 일도, 더군다나 그런 옷은 집에서조차 절대 용납이 안 되는 것이므로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더더욱 집에서 나오기 전에  죽도록 욕을 듣고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니까 말이다.  


그날 교감 선생이 지적한 옷은 엄마가 학교에 취직이 되었다고 제일모직에서 정장 한 벌(당시 38만 원)을 사 준 것이다. 아이보리색으로 투피스 정장이었고 치마의 길이는 무릎까지 오는 것이었다. 치마의 뒤트임 부분에는 치마가  걸으면서 더 갈라질까 봐 아이보리색의 작은 나비 모형 바느질을 해 놓은 소위 시침질을 해 놓은 것이었다.


엄격한 부모님 덕으로 정주는  평소에도 흐트러짐 없는 정장을 선호하고 정장이 거의 보편적인 옷차림이다.

교감이 괜한 트집을 잡는 것 같았다.  


  정주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성격이지만, 그때는 마음을 얼굴에 쉽게 표현하지 못한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벌개져서  자리로 돌아왔다.


교무실 중앙으로 불려 가서  채로 훈계를 듣고 있는 모습을 본 다른 선생님들은 무슨 일인지,  왜 그런지 궁금해 하였다.  그래서 정주는 입은 옷을 지적 당하였으 "치마에 붙은 나비로 누굴 꼬시려고 그러더라" 말한  교감 선생의 말을 그대로 해 주었다.


 중년쯤 되는 선생님께서는 정주를 위로하며 " K선생이 이해해. 늙어서 질투하는 거야. 내버려 두어. 우리가 새 옷 입고 와도 늘 그런 식으로 말해. 평상시 말버릇이 그래. 그리고는 돈 벌어서 옷만 해 입느냐면서 핀잔을 주는 게 교감선생의  특기야. 특기!.......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다음 날이었다. 정주 옆의 자리에 앉은 가정과 양 선생이 교감 선생에게 호출되어 갔다.  양 선생은 전북 0대를 나와 여기로 왔다. 광주 사태 직 그 지역의 어수선함을 피하여 여기로 발령을 희망하여 온 선생이었다.  선생의 아버지도 그 지역의 고교 교장이라고 하였다. 양 선생은 머리를 어깨 닿을 만큼만 기른 까만 눈이 반짝반짝한 정주와 동갑내기 선생이었다.


  교감 선생은 양 선생에게 머리 길이에 대해 지적하였다."머리 모양이 단발머리이거나  쇼커트가 여교사 머리의 모델이라 제시하면서 머리 길이가  길다고. 선생의  머리가 길면 학생들이 공부 안 한다."하였다는 것이다.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이현령비현령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건지  고무줄 논리로 신임 교사를  길들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교무실의 두 권력의 실세인 교감 선생과 교무부장이 젊은 교사들을 후리칠수록 그들의 우정은 더 결속되어 갔다.


Y여중에서의 기간은 양 선생과 거리가 가까웠고, 그녀가 월세 들어 살던 아파트에도 가서 그녀와의 시간을 같이 보내며 우정을 쌓았다.


 그러는 사이 2학기가 지나고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당시 대기 발령을 기다리며 임시교사를 하던 생물과 김 선생이 발령이  났다. 그런데 교통이 불편한 섬으로 난 것이다.

 일단 우리들은 그녀의 발령을 축하했지만 그녀는 발령 포기 각서를 쓰고 섬으로 가지 않았다.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이 낫긴 하지만 그녀는 G섬에서 생활하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었다.


  그러던 사이에 뜻밖에도 다시 그녀는 새 학기 3월에 K중학으로 발령이 났다.  그녀는 참 유능하고 다정한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발령 난 학교로 출근한 지 한 삼 개월 되던 어느 날 아침 그녀는 치맛자락이 버스문에 끼인 채 버스에서 내리다가 오토바이에 부딪히고 또 버스에 끌려가는

엄청난 일을 당하였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정주를 비롯한 젊은 선생들은 그 비보를 뒤에 듣고 매우 놀랐다. 늘 개량 한복을 입고 다니며, 예쁜  웃음을 짓던 김 선생은 한마디 말도 없이 그들과 헤어졌다. 젊은 그녀는 예쁜 나이에 서둘러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정주는 생물과 김 선생의 죽음이  매우 슬펐다. 가난한 가정에서도 티 없이 살아온 그녀는 홀어머니 고생이 이제 끝났다고 좋아했는데 딸을 먼저 보낸 그 어머니의 심정은 얼마나 처절했을까?

 

그리고 그녀의 태운 운구차는 이승을 떠나는 그날 그녀가  재직하던 학교 운동장을  마지막으로 돌아 나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정주와 양 선생은 약속한 듯이 울었다.


긴 겨울 지나 봄볕에 화사하고 깨끗이 피어난 한송이 목련이 간밤에 갑자기 내린 비로  허무하게 떨어져 내리듯이 김 선생은 그렇게 훌쩍 떠나가 버렸다,


 우리의 삶은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매 순간 진실하게 살아야 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말이다.


 정주도 대학원 진학으로 발령을 포기한 상태여서 이대로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엔 막막했다.

그냥 계약 기간 삼 년을 채우며 흐르는 시간에 맡기기에는 비정규직이라는 위치가 운신의 폭이 매우 좁다는 것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 외숙부님이 정주에게 전화를 하였다. "학교를 옮겨 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외숙부님이 가셔야 하는 자리에 정주를 추천하려는데

본인의 의중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 인생은 많은 선택 속에  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는 것이다. 정주는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이 나을 것이란 생각 했고, 어디서든지 마음만 먹으면 꿈을 펼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외숙부님의 제안 수용하기로 하였다.


  임시 교사 기간 2년을  남기고 옮길 결심을 하였다. 후임 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교감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교감은 느닷없이  " 네가 누구 딸이라면서? 진작 왜 나에게 말을 안 했느냐? " 하며 정주 아버지의 성함을 들먹이면서 고교 동창이라고 말하였다.


 그때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교무부장이 " 교감 선생님! 지금 그 말하시면  어쩝니까? 진작  잘 봐 주셔야지요." 하는 것이었다.  


정주는 생각했다.  사물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색안경을 쓰고 볼 이유도 없으며, 누구와의 인연을 들먹이며 잘 봐줄 이유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정주는 마음속으로 " 당신품격의 정도를 알겠군요.   편견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권위적인 교장이 되겠지요. "라고 생각했다.

'참 잘 되었다.  외숙부님이 나의 구세주였어.' 하고 정주는 생각하였다.


아름답지 않은 관리자와는 한 공간에서 숨쉬기가 싫었다. 세상에는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 많아야 살 맛이  나는 것인데.


정주 그곳을 떠나 직장을 옮기기로 결심 하고 나니 마음은 홀가분하였다.  한편으로는 양 선생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교감선생이 곧 교장선생으로 승진한다고 하니 양 선생에게도 머잖아 평화의 봄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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