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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이미 Mar 07. 2024

작은 별들과의 만남

김정한 소설에 나오는 '조마이섬'의 배경이 되는 낙동강 하구둑의 일몰은 참 아름다웠다. 수백 마리의 철새가 날아들어 그들이 창공에서 펼치는 군무를 보고 있으면 바라보는 이의 마음도 이내 철새가 되어 그들과 함께 춤추며 나는 듯하다. 그들이 그 대열을 흩트리지 않고 날고 있는 모습에서  자유로움 속에 내재된 엄격함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겨울의 천상 모습을 담은 한 폭의 그림 같다고나 할까?


낙동강 하구언 다리가 건설되면서 D 대학 근처의  옛 에덴공원은 도시개발이란 명분으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그 일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름다운 자연 경치는 인간의 편리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기억에만 남긴 채 역사 저편으로 휘발되어버렸다.


정주가 부임한 곳은 S중학교였다. 그 학교는 소규모 학급으로 한 학급에 35명씩 편성되어 1학년이 백 명이 넘고 전체적으로  3개 학년 합산하여 오백 명 남짓한 남녀공학이었다. 이전 학교에 비하면 한 학년 밖에 안 되는 숫자이긴 하나 대도시에 편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반농촌 반어촌 반도시에 속하는 다양한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곳이 더 교육이 필요한 곳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출근은 당시 그 학교 이교장 선생님의 자가용을 과학 선생인 조 선생님과 카풀해서 다녔고, 교사들도 거의 가족적인 분위기 같았다. 정주는 부임 첫해 1학년을 배정받았다.  학생들은 순박하여 좋았고 젊은 교사인 정주를 많이 따랐으며, 그녀도  열정을 쏟아 지도를 하였다.


 김양식과 바닷일로 부를 축적한  학부모들은 자녀를 위한 일에는 손 걷어붙인 채로 상당히 협조적이었고 학교장은 이를 잘 관리하는 듯했다.

 경찰 출신인 학교장은 학생의 잘못을 보는 즉시 방망이로 머리를 때려도 부모들은 자식교육시킨다고 좋아했다. 학생이 지각을 하거나 학생 신분을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때는 어김없이 훈육이 행해졌다. 마을에서  남의 담을 넘는 등의 나쁜 짓을 하다 걸리면 곧장 교무실로 전화가 오고 그 해당 학생은 교감에게 불려 가 교문을 쓸 큰 대빗자루로 얻어맞았다.


 교무실 한 복판에서 먼저  '인간이 되어라.'라고 맞은 것이다. 여러 선생님 앞에서 맞은 그 학생은 부끄러워  다시는 그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잘못할 수 있는 행동에 부끄러움을 가르침으로써 반복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계도했던 것이다. 그다음은 교장실로 가서 잔소리를 듣고 머리 맞은 후에는 다시는 나쁜 짓을 안 하게 되는 묘한 시스템을 지닌 생활지도였고 효과가 있었다.


 그 지역 주민인 교감은 그날 생활지도를 한 후에  주민들과 술판이 벌어지고 자식 교육의 명분하에 거나하게 톱밥에 묻힌 생 오도리를 초장에 찍어 먹는 등의 융숭한 대접을 받곤 했다. 그들의 선생을 향한 인정은 계속되었다.

 주로 어업과 김양식을 하던 그들은 약을 치지 않은 김이라고 또 임금님께 진상하던 김이라 자랑하며 교무실로 때깔 좋은 풍성한 김박스를 보내주곤 했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김 봉투 1개씩을 할당받아 그것을갖고  퇴근을 하거나 점심시간에 나누어 먹기도 했다.  물질로 따져서라기보다 자식을 가르쳐 주는 선생에 대한 그들이 잘할 수 있는  감사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어떤 분은 미꾸라지를 잡아 들고 가다가 학교에 들러 몇 마리 가져가라고 하시는 분도 있었다.


이처럼 자녀를 위한 교육을 하는 선생을 존중하고 존경하던 그들의 순박함에 모두 숙연해지곤 했다.

지금 같으면 세상 난리가 나겠지만 그 시절엔 그랬다. 자식을 위해 교육하는 생에 대한 깊은 존경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수업시간이었다. 수업시간에 눈에 장난기가 듬뿍 든 한 녀석을 눈에 익히고 나와서  다음 시간에 다른 반 수업을 들어갔다. 아까본 장난기 어린 그 녀석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그래서 정주는 그 학생보고 " 너희 반으로 가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녀석은 꼼짝 않고 눈에 장난기를 가득  담고 계속 사부작거리며 이십 분이 지나도록 계속  수업 방해를 하였다.


 그 녀석에게 " 앞으로 나와."라고 했더니 이 녀석은 겨우 나오더니  빠르게 교탁 안에 들어가 엉덩이를 넣은 채 나오지 않는 것이다. 수업하던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웃었다. 아이들이 나오라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수업 중에 교탁 밑에 들어가 있는 아이를 놔두고 나머지 시간 15분 정도 수업을 하였다.

 그때 그 녀석은 정주  다리 앞 교탁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앉아 있은 것일까?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와서  학생 실태를 찾아보니 그 학생은 쌍둥이였다. 정주가 착각을 한 것이다.


 그 학생을 불러 잘못 알아본 것에 대해 사과를 하였더니 자기가 아니고 형이라고 한다. 형을 부르면 자기는 형이 아니고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인데 그때는 일란성쌍둥이라 잘 구분하지 못했다.  이 녀석들은 그것을 빌미로 선생님들을 잘 놀렸지만 밉지는 않고 귀엽기만 하였다.

 

 한 번은 쌍둥이 형을 보고 동네 주민이 오해하여 나무랐던 적이 있었다. 주민의 나무람이 억울하다고 생각한 두 형제는 그 주민이 농작하고 있는 밭에 가서 수박에다  새총을 쏘는 장난질을 하여 수박을  다 쪼개 버린 일이 있었다.  도심 학교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작은 일들이 생겨났고 중학생이 한 일로서 웃지 않을 수 없지만 이 쌍둥이 형제들은  엉뚱하게 행동함으로써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생성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기도 했고 구김살 없이 성장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그들의 꿈을 키워갔다. 사설 학원이나 과외를 할 기회는  없었지만 오직 공교육에만 의존하며 자신의 꿈들을 키우던 그들이었다.

기초부터 하나둘씩  정주가 마련한 학급문고 50 권으로 아침독서 40분을 강제로 운영하였다.  3개월쯤 되자 학생들은 독서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기 시작했고 의사가 되겠다는 c. 승무원이 되겠다는 영은, 학자가 되겠다는 해랑, 시인이 되겠다는 은주. 현모양처가 되겠다던 정숙. 유치원 교사가 되겠다던 진희. 화가가 되겠다던 현미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하늘을 수놓은 작은 별들처럼 세상을 수놓을 미래의 별로 성장해 갈 바탕을 다져가는 시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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