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뜨락 2

먼산이 아재와 회초리

by 애이미

인아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기억나는 시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유인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각인될 정도의 기억은 의식의 저 밑 뿌리샘에서부터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세 살쯤으로 기억된다. 인아는 인아 엄마가 근무하는 학교에 누군가의 손을 잡고 간 기억이 잔존해 있다. 그 당시 인아의 손을 잡고 갔던 사람은 ‘동림 숙모’라고 칭하던 50대 여자였다. 인아 아버지 쪽의 친척으로 오갈 때가 없으신 분으로 인아네 집 살림도 할 겸 모셔다가 사신 듯하다. 유년기의 인아를 보살펴 키운 고마운 사람이라고 누누이 말한 인아 어머니의 설명은 기억하지만 얼굴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검정머리에 뒤로 비녀 쪽을 한 중년 여성의 등이 그녀의 등일지도 모르겠다.

인아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갔던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동림 숙모는 인아를 등에 업고 ‘한내천’을 건너 문선초등학교로 갔다. 그곳에 가서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인아에게 모유를 먹이고 다시 업고 인아를 집으로 데리고 오곤 했다. 인아를 업고 가다가 동림 숙모는 허리가 아팠는지 등에서 인아를 내리게 한 뒤 인아가 업어 달라고 보채기라도 한 듯, ‘한내다리 먼산이에게 주어버린다’고 얼르면서 인아를 먼산이 쪽으로 갖다 냅다 들이밀곤 했다.

인아는 무서웠으나 울 수도 없었다. 그 동네 아이들에게 먼산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불룩 나온 배에 초승달 같은 실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쳐들고 걸어 다니는 뚱뚱보이다. 먼산이 가 늘 입고 있는 광대 복장의 무명옷은 때가 묻은 저고리였고, 옷고름엔 손때와 밥때가 조화롭게 묻어 반질반질할 정도였으며, 거기에 햇빛이 반사되면 더욱 빛이 났다.

먼산이는 늘 대소쿠리를 옆구리에 차고 해 뜰 무렵이나 해질 무렵이면 밥을 동냥 다니는 배뿔대기 중년 남자로 존재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동림숙모는 인아가 울거나 걷기 싫어 투정을 부리면 늘 ‘먼산이 아재’를 들먹이며 인아를 그에게 보낸다느니 주어버린다는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곤 했다. 인아는 말을 잘 들어야 했다. 그 흉한 배뿔대기에게 보내지면 안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인아는 순하디 순한 양처럼 행동해야 했고, 울면 안 되었으며 움직이기보다 잠을 자는 시늉을 해야 했다. 그런 날이 계속될수록 인아의 뒤통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편편하고 납작하였고, 아이 중에서 가장 얌전하고 수월한 아이가 되어 갔다.


인아가 5살 때쯤 셋째 동생이 태어났고, 엄마 학교의 봄 소풍을 따라 ‘모래실’이란 곳으로 갔다. 엄마가 맡은 학급의 몇몇 언니들과 내려 쪼이는 햇볕을 받으며 유치원 가방을 메고 큰 바위를 배경으로 하고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응시하느라 눈부심으로 찡그린 사진이 인상적인 사진이다.

이 무렵 인아의 엄마는 어린 두 동생을 챙긴다고 맏이인 인아에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탓에 인아는 어릴 때부터 혼자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인아 엄마는 출근이나 볼일을 보러 갈 때면, 한 명은 업고, 한 명은 손을 잡고 인아의 두 동생만 데리고 다녔고 인아는 외가에 떼어 놓고 다녔다.

어떤 날은 며칠 인아를 외가에 두기 위해 더 수월하게 떼어 놓기 위해 만물상회가 있는 중앙시장으로 데려가곤 했다. 인아는 엄마를 따라 중앙시장 안에 있는 과자 도매업인 소위 만물상회인 영풍상회의 기억이 진하게 남아 있다. 그곳에는 온갖 색채 요란한 과자들이 맛깔스럽게 서로를 뽐내며 전시되어 있었다. 인아는 과자 종류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고를지 고민되었다. 인아 엄마는 인아에게 “먹고 싶은 것 다 골라라.”라고 했고, 인아는 인아를 보고 웃고 있는, 가장 좋아하는 둥근 단팥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인아 엄마는 5개를 사 주었고, 긴 고무과자도 사 주면서 포장한 종이봉투를 인아의 가슴에 안기면서 약속을 하였다.

인아는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약속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말 잘 듣고 기다려야 한다는 불평등 조약을 하였다.

인아는 맛있게 보이는 게 눈앞에 있고, 입안에 달콤하게 감미롭게 사르르 느껴질 원시적 감각 때문에.....

인아 엄마는 떠나고 인아는 혼자 외가로 돌아오는 길에 인아는 빵은 먹으면서 아무도 인아에게 말을 붙여주지 않는 그곳으로 왔다. 인아는 늘 하는 것처럼 이 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하였으나 심심하였다. 잠도 오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난것같았다. 그때 외가의 마루 벽에 걸린 인아의 키보다 큰 괘종시계가 큰 방울을 움직이며 더 크게 울려 퍼졌다.

‘ 댕~ 댕~ 댕~ 댕~ 댕~’

인아는 괘종시계가 몇 번을 치는지 마음속으로 세어 보았다. 5번 종이 쳤으니까. 오후 5시였다.

오후 5시. 밤이 되려고 준비하는 시간이다. 곧 어둠이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순간 인아의 마음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엄마 따라 수없이 오갔던 그 길을 혼자서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불쑥 들었다. 그래서 아무런 주저 없이 인아는 생각을 행동에 옮기기로 하였다.

인아는 더 늦기 전에 외가를 몰래 빠져나왔다. 인아는 작은 걸음으로 달렸다. 달리는 걸음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걸음 보폭보다 작을 수밖에 없었지만.

눈에 익은 길을 따라 가면서 마이크로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달리다가 돌부리에 넘어지면 낭패라는 생각과 숨이 차다는 생각 그리고 엄마가 사준 빵을 다 먹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궁색한 변명 거리를 찾고 있었다. 게다가 윤리적 피곤함까지 별의별 생각을 떠올리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달렸다.


인아는 엄마의 단골 양장점인 여원 양장점을 지나고 칠공주집이 경영한다는 약국을 거쳐 마이크로버스가 서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달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원 양장점을 지나고 약국 앞을 지나면서 쳐다보니 마이크로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인아가 횡단 도로를 지나려는 무렵 그 버스가 막 출발하려고 했다. 인아는 마음이 바빠졌다.

‘저 차를 타야 한다’고 생각한 인아는 무단 횡단하여 출발하려는 차의 꽁무니를 겁도 없이 손으로 치면서 달려 나아갔다. 마이크로버스 기사는 백미러 속으로 뛰어오는 작은 꼬마인 인아의 모습을 보았는지 버스는 멈추어 섰다. 버스 문이 이내 열렸다. 빛바랜 검은색 옷을 입은 차장 언니가 인아를 보더니 누런 운동화 신은 발이 버스에서 먼저 내렸고, 손을 내밀어 인아를 태운 후 자신의 배로 인아를 밀어 넣으면서 마치 곡예하듯, 문에 매달려 ‘오라잇’하는 것이었다. 무작정 버스에 올라탄 인아는 차 안을 둘러보았다. 근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그곳엔 아이를 업은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순간 희망은 절망으로 탈바꿈하여 인아의 마음속은 ‘쿵 ’ 하고 내려앉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없지?’조금 후 걱정과 낭패감이 세게 밀려 들어와 인아의 몸은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아는 달려가서 버스만 타면 되는 줄 알고 다른 어떤 생각도 해 보지 않고 달리기만 하였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다음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였다. 승객들이 하나 둘 오르기 시작했다. 인아는 눈을 크게 뜨고 엄마 찾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엄마가 타지 않는다면 난 이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럼 어떡하지? ”하는 낭패감이 밀물처럼 다가왔다. “그럼 아버지 학교로 찾아가야 하는데? ”아버지 학교는 어딘지 몰랐다.

“어떡하지?”

차장 언니가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아이를 안아 버스 안으로 태웠다. 걱정어린 눈으로 누군지 궁금하여 쳐다보았다. '아니, 인아의 둘째 동생이 아닌가? '

인아는 순간 눈에 생기가 돌았고, 마른 나뭇잎처럼 바짝 마르면서 갈증이 나던 입안은 비로소 침이 돌았다. 둘째 동생을 태운 뒤 엄마가 셋째 동생을 업고 버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인아는 집 잃고 부모 잃은 아이가 될 뻔한 순간이었다. 외가에 있어야 할 아이가 버스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인아 엄마도 몹시 당황한 눈빛이었다.

인아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 인아랑 엄마가 같이 오일장에서 사 온 수수 빗자루로 머리도 맞고 팔도 맞고 사방구석으로 피해다녔으나 분이 안 풀린 엄마는 수수빗자루 아까운줄 모르고 인아에게 융단 폭격을 했다.

그리고 다시 2차전이 되어 대나무 회초리로 종아리를 피터지도록 맞았다.

인아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울음소리를 내면 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참 잘못 했다.'고 인아는 생각했다.


인아는 빵만 먹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잘못을 했기에 아무런 저항없이 눈물만 흘리면서 그대로 참고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약속! 어기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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