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진눈깨비가 날리다가 그치는가 했더니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제법 눈이 쌓여 있다.
기온은 어제보다 내렸다.
책을 읽다가 한기가 약간 느껴진다.
'난방을 할까?' 하다가 아직 좀 더 있다가 하기로 한다.
따뜻한 차가 생각나 물을 끓이다가 강원도 소재의 설악산 백담사에 들렀을 때의 찻집이 생각났다.
"차나 한잔하고 가게나 "의 목판에 쓰인
그 조촐하면서도 투박하면서도 다정하기까지 하던 문구가 떠오른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을 탈고한 곳이라서
한 때는 좋아하여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찾았던 곳.
요즘 인기 있는 영화 '서울의 봄'에 등장하는 전 0이 다녀가고 난 후 나는 아예 백담사에 발을 끊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백담사가 생각났다.
'다시 한번 가면 그곳이 있으련가?'
'추억 속의 찻집으로 기억만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차를 내려 마시면서
정지용 시인의 <인동차> 란 시가 떠오른다.
오래전에 읽은 시라 생각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말이다.
노주인의 장벽(腸壁)에
무시로 인동(忍冬) 삼긴 물이 흘러내린다
자작나무 덜그럭 불이
도로 피어서 붉고
구석에 그늘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서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山中)에 책력(冊曆)이 없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달력도 없는 깊은 산 중에서 인동차를 마시면서
긴 겨울을 인내하는 노주인의 모습을 통해 혹독한 현실에서도 굴하지 않는 시적 화자의 삶의 태도를 반영한 작품이라 내가 좋아하는 시이다.
참, 잘 지은 시다.
붉은색의 불과 파릇한 무순의 색상을 대조시키고
따뜻한 방안과 눈이 휘몰아치는 삼동의 바깥 세계를
다시 대조시키면서 구체적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감각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구석진 그늘에서도 순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노래한 시이며, 혹독한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견뎌내는 노주인의 모습은 현재 곧 우리들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날이면 도자기에 잎차를 넣어 끓여 마시면
제법 운치가 있다. 그냥 찻잔 말고 도공이 직접 빚어 만든 그의 열정으로 구워낸 그의 혼을 담은
그 잔에 우리 나라에서 나고 자란 어린 잎을
우려 내어 한잔 마신다.
내 몸을 타고 흐르는 혈액을 데워주고 나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의 오장육부를 나 대신 여행하면서 구석구석 돌고 돌아 몸을다스려주고 기를 돋게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노주인처럼 차를 다시 한잔 내려 마셔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