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눈이 자주 내린다. 최근에는 거의 삼일 정도에 한 번씩 내리는 것이다.
도로엔 굵은 소금 크기의 염화칼슘을 누가 새벽에 그리 재빠르게 뿌리고 갔는지 햇볕이 나와 눈이 녹은 부분에도 염화칼슘 잔잔한 알갱이들이 눈 녹인 수고로움을 알라는 듯이 떠억 그 자리에 있다.
인아는 오래된 겨울 손 시린 기억의 한편이 떠오른다.
1966년쯤이었을게다. 그 시절에는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을 위한 생활공간인 사택이 조성되어 있었다. 인아집과 다른 선생 집 가족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집성촌처럼 같이 살고 있었다. 학교 건물 가까이 위치한 집은 직급에 따라 집의 규모와 조경이 다소 달랐다.
학교 근처 제일 좋은 집이 있었고, 고급진 조경으로 눈에 띄는 좋은 소나무가 있는 그 집에는 대머리의 키 작은 교장이 살고 있었고, 그와 무척 유사해 보이는 그의 아내는 검정 머리를 쪽 지은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그 모습을 하고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인아 집에는 식모살이하러 온 해숙이란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가난한 엄마가 사는 먼 시골에서 와서 인아네 집일을 도와주었다. 그 언니는 나이가 인아보다 한 살 위였지만 남의 집 살이하는 처지여서인지 그런지 아니면 천성이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부지런하였다.
추운 겨울에도 남보다 먼저 새벽에 일어나 학교 뒤뜰과 운동장 주변에 떨어진 솔방울과 솔가지를 모아서 짊어지고 오곤 했다. 마치 자기 집일하듯이 성실하게 겨울 땔감은 준비하곤 했다. 그리고 준비해 온 땔감으로 아궁이에 넣은 후 불을 지펴 밥을 짓곤 했다.
어떤 날은 언니가 아침에 인아를 깨워 늘 같이 가자고 했다. 인아는 잠이 오는 눈을 문지르며 언니와 같이 가서 솔방울을 많이 주었다. 서로 경쟁하듯이.....
인아는 놀이처럼 했지만 그 언니는 놀이가 아니었다.
추석이나 설이 다가오면 인아 엄마는 그 언니에게 새 옷을 사 입히고 돈을 주어 그 언니를 고향집으로 갔다 오라고 보냈다. 그 언니는 며칠 있다가 다시 돌아와 인아의 집일을 계속했다.
또래들은 학교 가서 공부하는데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던 그 언니는 어느 해 명절 자기 집에 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인아는 그 언니와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렇게 헤어졌다.
그 후 인아는 그 언니가 '마산의 어느 방직 공장에 취직을 했다.'는 후일담으로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야무친 그녀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아마도 그 언니는 가사 도우미보다는 더 활동적이고 또래들이 일하고 있는 방직 공장이 더 좋은 직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그 언니를 대신하여 집안일은 맏이인 인아가 도맡게 되었다.
겨울 어느 날, 김장을 한 인아 엄마는 인아에게 김장 배추김치를 담은 양푼이를 내밀면서 교장 집에 갖다 주는 심부름을 시켰다. 인아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추운 그날도 '심부름 잘한다.'라고 인아 엄마가 사 준 빨간색 모자 달린 코트를 입고 맨손으로 양푼이를 들고 그 집으로 심부름을 갔다.
쌩쌩 귀를 때리는 겨울바람에 빰까지 얼은 느낌이 들었지만 인아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볼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양손으로 무거운 양푼이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집을 향해 걸어갈수록 고사리 손은 얼었는지 감각이 둔해 왔으며, 게다가 북풍이 불어 김치에 먼지가 들어갈까 봐 걱정도 되었으므로 인아 자신이 추운 것은 어쩌면 그 다음의 문제이기도 했다.
한 10분 정도 걸어 도착한 교장 집 대문 앞에 서서 인아는 무릎을 구부린 후 그 위에 양푼이를 대고, 한쪽 다리를 까치발로 서서 초록색 대문 옆의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딩동 ’‘’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냥 되돌아 갈 수도 없고, 손도 시렸지만, 인아는 엄마의 잔소리가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 누르고 또다시 눌렀다.
‘딩동 딩동...“‘딩동 딩동... “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딩동 딩동...“‘딩동 딩동... “ 손도 저려 오고 까치발을 하고 있는 발에 쥐가 내리는 것 같아서 막 돌아서려는 그때였다.
대문 안쪽에서 고무신을 질질 끄는 소리가 집 안쪽에서부터 들리더니 조금 후에 검은색의 쪽진 머리를 한 중년 여자가 문을 열었다.
인아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아무개 댁에서 심부름을 왔다”라고 하자 인아를 쳐다보며
그녀는
“ 야아 야! 야~야, 이 추운 날 엄마 심부름 왔나? 이를 우짜노? 이런 착한 아~아가 어디 있노? ”
하면서 인아의 등짝을 때리면서
”아이고 개새끼야, 아이고 개새끼야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인아의 등짝과 엉덩이를 툭툭 손으로 치면서 계속하는 말에 김치 양푼이가 떨어질 것 같았다. 거의 얼다시피 한 두 손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노릇인데....
양푼을 먼저 받질 않고 검정 쪽머리의 그녀는 너스레를 하며 잔소리를 연신 해대는 것이었다.
인아는 그녀가 아주 원망스러웠고 빨리 그릇을 받지 않는 것이 얄밉기까지 했다. 게다가 인아는 자기 집의 음식을 갖다 주고 그 추운 겨울날에 심부름을 한 작은 아이에게 “개새끼"라고 욕하며 때리는 여자! ”그런 여자가 사는 집에는 '절대로 다시는 심부름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였다.
그 이후로 인아는 그녀의 집에 아니 그 교장의 집에는 심부름을 가지 않았다. 그곳에 대한 기억의 양은 증가하지 않았지만 그 집 대문 앞의 잔상은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다.
그 이후 인아 엄마는 인아에게
" 개새끼라 욕한 게 아니라 , 추운데 심부름 온 아이가 기특하여 말한 것이라고,
개새끼가 아니고 내새끼야 ."라고 .
교장 사모님이 인아를 칭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인아 엄마는
" 니가 유별나다."고ᆢ
인아에게 못을 박았다.
인아는 그래도 "새끼!라고 했잖아."
하고 응수하였다.
눈이 녹지 않은 길에 비까지 내려 마치 슬래쉬 음료를 빨대로 빨아들이는 듯한 입속 살얼음 느낌처럼, 미끄러질까 조심하며 걷는 길 속에 어린 인아가 마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