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인아 엄마는 인아에게 ‘넌 유별나서 초등학교도 재수했다 아이가’“ 하는 것이었다. 인아의 기억이 왜곡된 것일까? 인아는 재수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오직 기억이 나는 건 한 여름 하얀 나시 원피스를 입고 배탈이 나서 엄마 학교 구식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는 것과, 엄마가 장학사 오는 날이라고 학교 환경 꾸미기 해야 한다 해서 따라갔다가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던 기억만 잔존해 있다.
억지로 유년의 기억 파편이라도 주워 모아 인아가 초등 재수한 기억이 있는지 탐색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인아 엄마가 근무하던 남양초등학교 1학년 2반에 인아는 입학했고, 엄마는 1학년 3반 담임이었던 기억은 있다. 머리가 긴 처녀 선생님인 담임선생님은 신봉선 선생이었고, 동료 교사의 딸이어서인지 아니면 시골 아이들보다 예뻐서인지 늘 인아를 귀엽다고 잘 대해 주었다는 것은 생각이 난다.
학급의 친구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엄마랑 같이 가기 위해서 학교에서 무작정 기다렸으니 거의 근무한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1학년 입학을 하고 늘 학교에서는 운동장에서 단체 모임을 하였다. 1줄에 4명씩 줄을 서서 이동하는데 윗옷 왼쪽 가슴에 신입생들은 하얀 손수건을 달았던 기억이 있다.
담임이 “하나, 둘, ”선창 하면 학생은 “셋넷” 후창을 하면서 새 걸음처럼 종종걸음으로 줄을 맞추려고 보폭을 맞추곤 했다. 줄을 맞추어 서 있는 것도 7살 아이들에겐 어려운 일이었지만 맞추어 놓은 줄이 쉽게 흐트러지면 교사는 맨 끝 한쪽 아이의 어깨를 누르면서 짚고 제자리걸음으로 정지시키면 다른 쪽 아이들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 줄을 맞추며 교실로 입장하는 것이었다.
학교가 처음인 아이들이 줄을 맞추기는 산만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오직 줄 맞추기에 목숨건 듯 중요하게 여기던 시대였던 것 같다.
몸집이 작았던 인아는 어깨를 누르는 담임교사의 손길이 아팠는지 인아는 교사가 자기를 꼬집는다고 하면서 학교에 안 간다고 엄마에게 투정을 했다고 한다.
그 일로 엄마는 인아가 초등학교를 한 해 접었다고 하는데 시쳇말로 재수를 했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인아는 어깨를 아프게 짚어 엄마에게 이야기 했던 기억은 나는데 재수를 한 기억이 없다.
초등 재수는 인아가 유별나서 일어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