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뜨락 5

동생 부자인 집사

by 애이미

인아는 초등1학년 끝나갈 무렵 새 동네의 200평이 넘는 큰 기와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오지인 고성이란 곳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그때는 교통이 불편하여 자주 집에 오지 못하였다.

엄마랑 동생이랑 살게 된 집이었다. 기와집 본채에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방이 2개였고, 아궁이가 있는 부엌과 부엌방이 있었으며, 곁방도 1개가 더 있었다. 그리고 아래채에는 방 2개와 화장실 2개가 있는 집이었고, 정원과 마당이 꽤 넓은 집이었으며 대문 진입로도 상당히 길었던 것이다.


이사 간 집은 시내에선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자녀를 돌볼 사람이 없는 엄마 입장에서는 집을 세를 놓으면 아이들끼리 있어도 엄마는 일단 안심이 되니까 아마 그랬을 수도 있다. 그 집은 대지와 규모는 컸지만 수도 시설도 없고 우물도 없었다. 그 당시 집들은 대부분 그랬다.

물이 필요하면 공동 우물가에 가서 물을 길어 와서 사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집이었다. 인아 엄마는 몸이 허약하여 힘을 쓰는 일은 전혀 하지 못하였다.

인아는 동생들이 어리고 집안에 물 쓸 일이 어디 한 두 군데랴마는 당연히 물을 긷는 일과 시냇가에 가서 동생들의 기저귀 빨아 오는 것은 인아 담당이었다.


69년 2월에 인아의 남동생이 태어났다. 인아는 2학년이 되었다. 직장과 집안일 그리고 네 명의 육아를 해야 하는 엄마는 한층 더 바빠졌다.

그래서 대부분의 심부름은 인아가 집사처럼 다 해결해 주었고, 엄마가 소망하던 남동생 출생으로 인아의 일은 더 많아졌다. 남동생을 위해 만죽을 만들기 위해 쌀을 방앗간에 빻으러 가는 일, 손두부 사러 가는 일, 이불 홑청 풀 입히는 일, 기저귀 빨래 등 가사를 도맡아 해야 했다.

오전에 학교에 갔다가 오면, 물을 긷고 길어온 물로 동생들의 목욕물을 데워서 씻기고, 그 물에다가 걸레를 빨고, 오염된 그 물도 그대로 버리지 않고 마당을 쓴 후에 먼지 일어나지 않게 뿌린다. 동생 똥 닦아 주고 요강 비우고, 부엌에 군불 때고 , 엄마 도와 식사 준비하고 식사 나르고, 보리차 끓이고, 숭늉 퍼주고, 기저귀 세탁하러 시냇가에 나가는 등 기타 잡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루는 훌쩍 지나간다.

인아의 둘째 동생은 나머지 동생들과 소꿉장난을 하고 데리고 놀면, 인아는 엄마의 대리인이 되어 조수처럼, 심부름꾼처럼 행동하며 일을 해결해 나갔다.

인아는 8살이지만 또래들과의 삶이 달랐고 너무나 바빴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랑 언니의 보호 속에서 투정을 부리며 아양 떨면서 마음껏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고 싶은 대로 자유를 누리며 살았지만, 인아는 자기 아래로 3명의 동생이 있었기에 늘 자기 자신보다는 그들을 챙겨야 했다. 학급 조사에서도 인아가 동생이 제일 많은 아이이기도 했다.

인아는 여덟 살 나이에 동생이 3명이 된 부자가 되었다. 동생을 챙기고 같이 놀고, 기저귀를 냇가에서 빨아 오는 등 하루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엄마는 인아보고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했다. 인아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아마도 집안을 위해서 헌신을 해야 하는 일인 것 같았다.

어느 날 인아의 학교 여교사들이 인아의 집을 방문했다. 인아는 그들의 방문 이유를 모르고 있었는데 안방에서 하는 이야기소리가 마당까지 들렸다.

인아 엄마가 병가를 낸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아이를 키우느라 그사이 몸이 몹시 쇠약해져 간 것 같다.

그때 인아는 선생님들께 배웅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바로 밑 5살 배기 동생이 응아를 하고 변을 닦아 달라고 인아 앞으로 아랫도리를 내린 채 와서 엉덩이를 들이대었을 때였다. 인아는 늘 하던 것처럼 말없이 뒤를 닦아 주고, 동생이 싼 분비물이 담긴 요강을 들고 가서 하수구에 비우고 깨끗이 씻었다.

그때 인아가 동생의 뒤를 닦아준 후 요강을 들고 가고 비우러 가는 광경을 본 엄마 동료들이 아이가 아이를 보살핀다고 칭찬을 하면서 학교로 돌아간 뒤 소문을 내어버렸다.

인아를 화제로 하여 교무실에서 이야기 꽃을 피운 모양이다. 그러면서 ‘0 선생 큰 딸이 착하다고.....

살림 밑천이라고 ’하며 칭찬을 하였다.


인아는 저녁 9시 넘어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때에는 고전 읽기 책을 읽고 구구단을 외고 숙제를 하고 성실한 학생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봄소풍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쪽 운동장에서 담임 선생님이 인아를 보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인아는 작은 걸음으로 종종거리며 선생님 쪽으로 다가갔다. 인아는 인사를 한 후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인아는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았다. 한 팔을 뒤로 하여 다른 팔을 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선생님은 인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넌 영리하고 기특한 아이야. 동생 챙긴다고 고생이 많다며 “ 하면서

난데없이 칭찬을 하는 것이다.

인아는 마음속으로 ‘난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남자 담임이 알고 그러지? ’하는 생각과 함께 평소 교실에서 무뚝뚝하고 무서워 보이던 남자 담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 다음으로 인아를 칭찬해 준 사람이었다. 얼마 후 그 담임 선생님이 폐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인아는 참 슬펐다.

하지만 슬픔에 빠져 있을 수 없었고 수업을 마치고 급하게 집에 돌아오면 동생을 업어 주어야 했고 보리차물을 끓이고 남양 분유룰 타서 먹이고 아이를 재우고, 동생들이 자면 우물가에 가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 나르고 , 냇가에 가서 기저귀를 빨아 세수 대야에 담아 이고 돌아와야 했다.

그러고 나서 저녁이 되어 동생들이 자면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고 피곤할 때엔 몰래 인아만의 해결 방법이 있었다.

동생의 먹거리인 분유와 설탕을 섞어 씹어 먹는 쾌감은 그 무엇을 따라올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연유를 몰래 빨아 들이키는 맛은 더 일품이었다. 아마도 엄마는 동생이 다 먹은 줄 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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