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못 하세요? 안 하세요?

by 애이미

나의 첫사랑은 짝사랑으로 고등학교 1학년때 선생님이었다.

정치경제와 윤리를 담당한 그 선생님 때문에 그 과목은 2년 내내 늘 전교 1등이었고 사범대를 선택할 때도 그것을 전공할까 생각할 정도로 그 괴목은 재밌고 편했다.

홀로의 긴 짝사랑은 든든한 방패였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아 나는 사회과가 발령이 잘 나지 않고 적체되는 걸 알고 발령 잘 나는 과목으로 선택해야 했다.

좋아하는 과목이 아닌데도 그것이 생활의 방편이 되어 지금껏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이 되었다.


대학 1학년때는 공부만 하였다.

A장학금을 받고 학과에서 수석을 하니 동기들은 부러움 질투의 시선을 보냈다.


난 상관치 않고 다른 학과의 도서관파와 어울려 공부에 매진하였다. 목표는 두지 않고 그냥 했지만 사범대는 취업이 정해져 있었다. 부모 모두 그 당시 희소한 부부 교사라 교사되는 게 싫었지만 엄마는 사범대 아니면

대학 다닐 필요 없다고 하신 분이라서

그때 나는 무척 소심하여 다른 것을 생각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교사보다는 교수가 되는 게 낫겠고

잘할 자신이 있었다.


어느 날 나를 좋아하던 동기가 다가와 소개팅을 권유하고 주선했다.

장학금을 받아야 할 집안 형편이라 다른 데에 신경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난 거절하였다. 당시 대학생들은 디스코텍이 유행이었다. 게임 기계가 커피기계처럼 버젓이 길에 서 있어도 한 번도 하고 싶은 마을은 일지 않았다.


윤리적 이상적 자아가 훌쩍 성숙해 버려 그런 일은 잡된 것이라 여겼으니까.


그다음 날 그녀가 와서 "자기 지인이니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며 저쪽에서 나를 보고 싶다 하니 한 번만 보면 안 되겠냐고? "

그렇다. 나를 생각해서 주선한 소개팅인데 ᆢ

그렇게 하자고 했고 2팀이 소개되는 장소로 나갔다.


나가보니 그 동기와 내 가 2팀이었다.

소개팅 나온 남학생은 치의대 수석이었고 나는 우리 과 수석이라고 그 동기가 설명을 하더니

"잘해봐" 하면서 나가버렸다.


둘만 남은 우리는 서먹하고 할 말이 없이 묵묵히 있다가 고려당 빵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키가 176센티로 휜칠 했고 테니스 라켓을 갖고 있었고, 난 제일모직 검정 트렌치 코트를 입었다.


그는 5 남매 막내로 중학교 가정 선생하는 막내 누나가 자신의 공부를 시키고 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갔다가 다시 치의예과 들어왔다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고.

난 부모가 부부교사로 장녀란 이야기를 했다.


그날은 커피를 마시고 저녁은 순두부를 내가 샀다.


그는 서점에 들러 나에게 문학사상 3월호를 사 주면서

누나가 10년째 작가지망생이란 이야기까지 덧부쳤다.


고교선생님 짝사랑 중인데, 이 남자는 약간 풋내가 나는 느낌이었다,

그날 그는 나를 아파트까지 데려다주고 그는 돌아갔다.


2주일 후, 그가 학과 사무실로 엽서를 보낸 것이다.

엽서는 도착한 지 꽤 되어 보였고 내손으로 들어오기까지 학과에서 꽤 수난을 겪은 티가 났다.


엽서 1

개강 당구도 치고

개강 축하주도 마셨으니

이제 공부만 해야지


엽서 2

지리산 천왕봉에 혼자 올라

쌓인 눈을 버너에 담아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나뭇가지의 빨간 리본을 보고

너를 생각하여 엽서를 쓴다


는 만년필로 적은 내용이 물기로 약간 번져 있는 것이었다.


엽서. 도착한 날 나는 학과나 동기들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서로 연락을 하는 건 엽서와 편지와 전화이지만 전화는 가족이 모두 알게 되니

조심해야 했다.


연락할 방법이 없는데 ᆢ

그때 소개한 동기가 그 오빠가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더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고

우리는 그녀 덕분으로 다시 만났다.


80년대 대학생들의 만남은 지금생각하면 고루하고 볼품없겠지만

다방에서 만나 철학을 사상을 이야기하고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고 형이상학만 논하고 형이하학은 마치 속물처럼 여기는 지적 사치를 지향했었다.

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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