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연애 못 한 게 아니고 안 했다고

by 애이미

그와의 만남은 대학 1학년 말에 소개팅으로 만났다.

일주일 열심히 공부하고 일요일에 다방에서 만나 커피 마시고 저녁을 같이 먹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헤어지곤 했다.


그는 치의예과 축제에 나를 초대했고 대학 축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양복 정장을 입은 그의 모습이 품격이 느껴졌다.

단정한 외모의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나의 연예세포는 죽어 있었다. 아니 한 번도 깨어 있은 적이 없었기에 남녀 사이에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몰랐고 남녀의 사랑의 행동은 큰일 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게 옳을 것이다. 뽀뽀를 하면 시집가야 되는 줄 알았으니까 말이다.


아무 말없이 집 앞까지 와서 나를 데려다주고 그는 돌아갔다.


일주일 후 우리는 다시 만났고 나는 여전히 커피 마시고 밥 먹고 서점에 가거나 커피 마시는 것을 루틴 처럼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 하나 생긴 것 같아 든든했으나 이성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미진하였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내 생활은 조금 흔들렸다.

도서관에 앉아 있어도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나고 '그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등에 신경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를 만나면서 2학년 1학기 성적은 떨어져 B장학금을 받았다. 난 한 가지에 몰입하는 괴팍함이 있었다.

엄마는 반액 장학금 받았다고 책망했고, 집으로 전화 오는 남자가 누구냐고? 다그쳤다.


난 치의예과 학생이라 대답했다. 엄마는 "의사 사위는 열쇠 3개(아파트. 자가용. 병원) 해 쥐야하는데 우리는 교육공무원이라서 그럴 능력이 전혀 없다."라고 하시며 "아예 더 깊어지기 전에 만남을 끊어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자식이 너 혼자가 아니니 너만 지원할 수 없다."라고 선을 그으셨다.


난 그 당시 너무 얌전하고 소심해서 부모 말을 거역하지 못하였다.


그 후 그와 만났다. 그의 큰형이 차를 몰다가 사람을 치여 집이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고 당분간 못 만날 것 같다면서 우울해했다.

그리고 누나가 학비를 지원하긴 해도 큰형이 어려운 사정이라 큰형 대신 당분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성제대를 나온 아버지는 연로하여 능력이 없다고 그의 현재 집안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남보다 판단이 빠른 나는 우리 집의 후원도 어렵고

그의 집도 그러하니 우리는 서로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가족의 구성원이라 가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주위의 환경 운운하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공교롭게 그의 난감한 일의 발생과 엄마의 충고가 현실적인 것이란 판단을 내리고 먼저 마음의 빗장을 걸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그의 전화가 누누이 왔다. 하지만 난 회피하였다. 그래도 계속 전화가 와서 동생이 받아 바꿔 주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반가웠지만 난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자존심을 죽이고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한 것이라 했다. 약간 떨리는 듯한 그의 음성이 내 귀가를 적셨지만. 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진정한 자존심이 무엇인지 알고, 전화하지 말라고

매몰차게 쏘아 부치고 있었다.


전화 저편에서 그의 목소리가 애잔하게 들렸으나

나는 내 마음을 속이면서 그를 냉정하게 대하였다.


연애! 해 보지도 못하고 현실의 제약 속에서 허우적 대다 끝난 것이다.


"올라가지도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아라."

우리 엄마의 거룩한 가르침!


40년 전의 일이 생각난 것은 딸이 얼마 전에 엄마 닮아 연애 고자라고 이야기를 하길래 아무 대응 못하고 있다가 잊고 있던 오래 묻혔던 이야기가 살아난 것이다.


아마도 어디에서쯤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잘 살고 있을 그에게 축복이 있기를 빌며 젊은 날의 편견과 자만 그리고 섣부른 판단과 우리의 사랑을 전개할 용기가 없었던 그때를 반성하며 그를 떠올려 본다.


살아 있다면 한 번쯤 만나 그때 잘못했다고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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