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부재

유년의 뜨락 7

by 애이미

인아를 비롯한 사 남매를 키우던 인아의 엄마는 건강이 악화되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엄마가 기침을 하더니 흰 수건을 가져오라고 했다. 인아는 빨랫줄에 가서 수건을 걷어와서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기침을 쿨룩거리더니 빨간 피를 수건에 묻혀 내었다. 인아는 깜짝 놀랐다.

엄마는

" 내가 죽으면 네가 제일 큰일이다. 네가 동생들 다 걷어 키워야 된다. 알겠지."

그런 후

"나는 네가 불쌍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리 산다. 니 불쌍한 아이 안 되게 하려고.." 하면서

다시 쿨룩거리더니 선혈을 토하시는 것이었다.


그 후 엄마는 큰 딸인 인아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마산의 폐결핵 요양소로 훌쩍 떠나 버렸다.

사 남매를 두고.....

마산의 폐결핵 요양소란 말만 남기고 가서, 그 요양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엄마를 보러 병문안을 가는 것도 아예 동생들 때문에 생각도 못하고 그저 학교에 다니면서 동생들 챙기는 것만 인아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엄마가 입원을 한 후, 빈 공간을 채울 두 사람이 왔다.

한쪽 눈이 멀어 한쪽 렌즈가 까만 안경을 쓴 여든네 살의 친할머니는 형식적인 존재였고, 대학의 본고사에서 떨어진 팔포에 사는 사촌 막내 언니가 인아 동생들을 돌본다는 명분으로 와 있었다.


그런데 친할머니는 방안만 지키고 계시고 그 언니는

아버지에게 용돈만 받고 인아 동생들을 방치하고 멋을 부리며 밤마다 외출하여 싸돌아만 다녔기에 실제는 모두 인아가 모든 것을 해 내야 하고 빈 곳을 채워야 했다.

아홉 살 인아의 눈에 비친 사촌 언니는 농땡이 그 자체이고 아주 얌체였다.


안방에는 친할머니와 그 사촌 언니 그리고 동생들이 자고 인아는 부엌에(사투리 정지) 딸린 방에서 뒷 처리를 하고 자는 것이다.

부뚜막의 아궁이에 불을 때고, 집안에 나무가 없어 책을 뜯어 불을 지펴 밥을 하고 불길이 발갛게 타오르는 그 앞에 앉아 있으면 안온감과 평온함이 인아를 감싸는 것이었다.

엄마가 없는 인아의 집은 텅빈 듯 했다.

규모가 있는 기와집이었지만 그런 만큼 그 부엌방의 밤엔 쥐들의 질주 시간인 듯했다. 쥐들은 자기들의 세상인 듯 찍찍거리며 방의 천장을 마음대로 누볐고,

쥐의 발소리와 찍찍소리는 묘한 방정맞음이 있었다.

인아는 자리에 누웠다가 무서워서 다시 일어나 방의 불을 밝히면 쥐들은 조용해졌다.


불을 켰다가 다시 껐다가 쥐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밤은 깊어 갔지만, 영리한 쥐들은 인아의 밤잠을 설치게 알았고, 인아는 자신이 잠든 사이 쥐가 방에 내려와서 급습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불을 다시 켜고 자야만 했다.


엄마가 없는 초등 3학년 열살의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우물가에 가서 우물을 길어 와서 동생들의 얼굴을 차례대로 씻기고 그 물로 걸레를 빨아 방과 마루를 닦은 후 그 물을 마당에 뿌리면 청소가 끝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이내 저물녘이 되어 버린다.


또 인아는 물동이에 물을 받아 출렁거리지 않게 똬리를 정수리 부분에 반듯하게 대고 입에 연결된 끈을 물고 한걸음씩 조심조심 걸어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걸어오면서 물동이 물이 출렁거려 물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물가에 물을 길어 갈 때는 아주머니들이 오는 시간대를 이용해야 되었다. 왜냐 하면 인아가 직접 두레박질을 하여 물을 퍼지 않아도 아주머니들이 인아를 측은하게 여겨 직접 퍼 올린 물을 인아의 물동이에 물을 채워 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 시간대에 가면 인아가 직접 우물을 길어 올려야 한다. 깊고 시퍼런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 너무 무서워서 인아는 자신도 모르게 잡고 있던 두레박의 끈을 놓아버렸다.

시커먼 우물 속을 들여다보고 그 물을 두레박에 퍼서 올리려면 뭔가 그 속에서 인아를 끌어들이는 듯하여 인아는 순간 두레박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어떨 땐 두레박을 모두 빠뜨려서 물을 퍼서 길어 올릴 수가 없었던 때도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특정 날을 정해 빠진 두레박을 건져 올렸다

그러면서 그들은 “누가 이런 장난짓을 했는지? ” 하면서 투덜거렸다.

하지만 인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 동네 우물에 빠진 두레박은 전부 인아가 빠뜨린 것이다.

왜 우물을 쳐다보면 무서웠던 걸까? 그 많은 두레박을 빠뜨리면서까지 그 우물의 공포에서 탈피하지 못한 걸까? 우물은 인아에게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고 존재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