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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이미 Feb 19. 2024

미아 선생과 그물 스타킹


 미아 선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분명히 수신 차단을 했는데 ' 뭐가 잘못되었나?' 받고 싶지 않았다. 

"2번째 시집을 내었어요."라고 문자가 뜬다.


  미아 선생을 처음 만난 건 2000년도에 B고교에 발령을 받아 근무할 때였다. 우린 나이가 한 살 차이라  친할 수 있었으나 난 직장과 육아에 바쁘게 정신없이 살았고 미아 선생은 독일어를 전공하였으며  미혼으로 방학 때마다 독일 자유 여행을 하며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그러나 문과 여선생들을  폄하하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고 다니며, 자신의 우월을 과시함으로써  선배교사의 미움을 받고 있었고  특히 당시 고교의 직접 선배인  모씨와는 드러난 앙숙지간이었다.


    그녀와 달리 주요 과목이라 줄곧 4년간  담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학교일에  매여 있었으나,  그녀는 제2 외국어라 담임도 배제되어 시간적으로 훨씬  자유롭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 사실  부러운 것도 있었다.

 

  남자고교라서 그런지 적으로 남교사가 많고 여교사가 희소했던 때여서 여선생들은  인기가  꽤 있었다. 특히, 성장기와 질풍노도의 시기의  학생 들이라서인지 여선생들의 외모에 특히 옷과 자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듯했다.


어느 날이었다. 3반 수업을 하던  중에 한 녀석이 질문을 하는 것이다.

  "샘요? 샘 독일어 미아샘이랑 친해요?" 수업 외적 질문을 하는 것이다.

"같은 동료끼리 친하고 안 친하고 어디 있니? "

"그래도 말 좀 해주세요. 그 선생님 때문에 우리 공부가 안 된다고요?"

"왜? 니들 공부 안되는 것을  그 선생님  탓을 하니? 이 녀석들이?"

  그랬더니 갑자기 시끄러워지더니 서로 돌아보며 삼삼오오 시시덕거리는 것이다. "조용히 하고  자! 반장이 대표로 일어나서  이야기해 봐요."라고 했다.


  까까중머리 (공부 집중하겠다는 의지 표방으로 머리 밂) 반장이  일어나더니 "그 샘 검정 미니 가죽치마 입는 것은 그저 봐줄 수 있어요. 근데. 그물 스타킹에다 빨강블라우스에 다 비치는 검정 브래지어는 너무 선정적이지 않나요? "

"공부하려고 해도 집중이 안 되는데요."

"그 생각만 하면  진짜 우리가 공부가 안 되어요? 선생님이 말 좀 해 주세요." 

 그러면서 "우리가 얼마나 에너지가 많은 나이인데" 하며 뒤의 아이들을  돌아보며 씩 웃기도 하고 키득키득 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것이었다.


  수업 마치는 종이 쳤다. 나도 그들처럼 웃고 나왔다.

교무실로 오면서 나는  '미아 선생과 연령대가 비슷하여  나에게 도움을 청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주당수업을 5시간이나 들어가니  아이들이 거리감 없어서 편해서 그런 걸까?'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 줄 수도 없고, 설령 이야기 한다고 해도 수용 여부도 그렇지만 서로 더 서먹해질수 있는 예민한 부분이었다.

 그 후로 미아 선생의 옷차림을 유심히 봤으나  봄이 지나갈 때까지 단벌인 듯 그 옷차림은 계속되었다.


 한 달 후,  5월 스승의 날에 아이들이 나에게 선물을 했다. 그물 스타킹  검은색과 살색으로 두 개를.

 미아 선생처럼 그물 스타킹을 신고 오라는 메모와 함께.


 해 여름 방학에 독일을 다녀온 후 그녀는 교원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휴직함으로써  우리는 헤어졌고, 난 그 학생들 앞에 신지 못하고 이듬 다른 고교로 전출하였다.


 세월이 13 년이 흘러갔다.  2013 년  봄이 되자 나는 모 여고에서  당시 학생들이 선물해 준 살색 그물 스타킹을 긴치마에 살짝 신은 적이 있었.


  "샘! 그렇게 안 보이는데, 은근히 야하시네요. (아르리꼴라리) 그물 스타킹을 다 신고요." 하며 놀리는

 이었다.


우리의 생각보다 학생들은 의외로 교사의 복장에 대해 아주 보수적이고 엄격하다. 소위 선생에 대한 기대 수준이 있는 것이다.


  난 "복식도 교육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교사의 복장은 피교육자의 모델이다.  내가 편하다고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입는 것은 나의  자유일 수 있지만  성장 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생각해   선생 된 자의 무의식적인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에게 무형적으로  반영된다면 이또한 중요한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찌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겠는가?


  선생으로서 교실의 담임으로서  집에 있는 엄마보다 또 용역체에서 일하는 사람(이분들을 경시한 게   아님)들의 옷차림보다 못하다면 학생들이 무얼 생각하겠는가?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교단에 서면서 반바지와  늘어난 티에 유행하는 크럭스나 슬리퍼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은 좀 아니지 않은가?

 꼰대의 잔소리라고 치부하고 구태의연한 소리로만 들을 게 아니라, 학생들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새겨 들어야 하지 않을까?

 

 입춘이 지나 오늘은 우수이다. 남부지역에서는 벌써 매화가 피었다는 아름다운 소식이 왔다. 지난해보다 더 아름답고 존경받는 교사가 되고 그런 선생님을 만나는 봄학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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