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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그녀

나를 푸는 중입니다

by 애이미

처음으로 수술대에 누워

제왕절개 하던

공포의 그날


그 대가로

신은 나에게

보물을 선물하셨다.

그러나

신의 보물도 아랑곳없이

딸 낳았다고

미역국도 먹지 못하게 하던

그날의 그녀.


만날 때마다

오랜 빚 독촉 하듯이

손녀는 이자일 뿐

손자만을 요구하던
혹독한 채권자.


철옹성 같은

자신의 신념으로

막무가내로

집안 대를 이어야 한다며
겁 없이 직장까지 그만두라고
호령하던 그녀.


좋은 게 그냥 좋다고

그런 게 아닌데

우매한 나는

인간들의 하찮은 욕망을 실현하려고

다시

더 알아 더 공포스러운

그날


복부 짼 곳을 다시 째

복부에 호치키스로 열네땀이나 박고

지워지지 않는 훈장으로

난 울었다.


신은

한번 더 예쁜 보물을 주셨지만

그녀는

여전히 오만했다.


주 6일 근무하고

피곤 하여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메말라가도,


휴식'이란

두 음절의 소리와 의미는
인쇄된 글자에 불과한

사치요, 이상일 뿐,


쉬고 싶은 갈증이

분수처럼 쏟아져

호수처럼 고여도

한낫 벽에 걸린 그림일 뿐


아들 못 낳은

냉혹한 인습의

포로가 되어 초췌해져 갔다.


결혼이란 아름다운 너울로

며느리에게 멍에를 씌우는 것이

그 잘난 집의 질긴 전통.


누가?

언제?

정한 칙이었나?


남의 손에 맡겨 키우는

연년생 어린 두 딸을 데리고
2시간 넘어 거리를

자가용으로 달리고 달려서
단숨에 달려서

더 피곤했던 그날의 그곳.


무겁게 감기는 눈꺼풀 치켜가며

백화점서 최상급 부식들을 준비하여

잔뜩 배곯은 냉장고를
채워야 하는 당연함은

여전히 탕감되지 않는 빚이다.


빈손이어서 더 좋은,

마냥 가벼운 그녀의 오만한 딸들은
아주 당당하고 마른자리서

참새처럼 재잘대며 멋있게 노래하고


그녀는

그녀를 꼭 빼닮은 딸 뒤에 숨어

은밀하게 모기만 한 소리로

"달랑 ㅇㅇㅇ만 사 왔다" 하며

작당하고 왜곡하던

비겁한

늘 그날의 그녀.

그녀는 왜 그랬을까?

누가
언제
어디서 발원된,
그 막대한 권력을
그녀에게 쥐어 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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