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50대 싱글인 K녀와 같이 근무할 때입니다.
파티션으로 근무 부서가 구분되어 있었으나 같은 방향으로 일률적으로 배치되어 있었기에 뒷라인에서 일어서서 보면 앞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앞 사람의 행동이나 컴퓨터 화면이 시야에 들어오는 거리였습니다.
그날 아침 그녀는 혼잣말로 궁시렁대더니 책상 서랍을 열고 가위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커피를 가지러 가려고 일어나는 터이라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한 잔 가져오는 사이에 갑자기 교무실 전원이 다 나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 뭐야!" 하는 소리와 "다 날아갔다. 어째? 저장할 걸" 하는 낭패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동료 70 명 중 자기 나름대로 표현은 안 했지만 각자 의자를 돌려 중앙을 향하거나 무슨 일인지 허둥대며 불이 저절로 나간 것에 의아해 했고, 원인을 찾으려
행정실에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전원이 들어올 때까지 시험 출제 원안을 노트북 작업을 하던 사람들은 투덜대며 매우 당혹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조금 후 갑자기 그녀 주위가 시끄럽기 시작했습니다.
" 아니, 가위로 전선을 자르면 어떡해요? 선생님"
하면서 그녀 밑의 직원이 '참 어이없다.'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고, 이 말을 들은 동료들 몇 명은
그녀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미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시니컬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평소와는 다르게 얼굴이 벌겋게 된 채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고학력자들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마침 ' 이때다'하고 기회를 잡아
그간 그녀에게 당하고 쌓였던 다수의 감정을 해소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야유하는 듯한 얼굴 표정으로, 속삭이는 입으로, 팔짱 낀 모습으로 야릇한 눈길로 서로서로 내밀한 소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자신만 잘난 체하며 위로만 아부하고 부하 직원이나 동기에게 늘 오만하게 행동하던 그녀가 오늘은 제대로 혼나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나요?'제 오지랖에 발동 버튼에 전원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제어하고 관망하기로 했습니다.
전원이 들어오고 수업종이 울리자 하나둘씩 교재를 챙겨 교무실을 나갔습니다. 술렁이던 분위기는 누그러졌습니다.
2시간쯤 지났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교내 식당으로 가니
그녀의 아침 행동이 새로운 화제가 되어 다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녀도 그런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점심시간 끝나갈 무렵 그녀가 나에게 커피를 가지고 다가왔습니다.
"부장님 커피 안 하셨죠?"
이전에 4년 같이 근무한 후 8년을 같이 근무해도 자기가 먼저 갖고 오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업무 및 수업시수 배당에서도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본위였고, 불협화음이었던지라 모두 기피하는 인물이었고, 심지어 그녀를 회피하는 그녀 동기들은 도저히 같이 업무 할 수 없다고 토로하거나 선포를 하고 가면 그녀와 같이 하는 건 결국 선배인 저의 몫이었습니다.
저에게는 표면적으론 조심을 하는 듯하기도 했습니다만 속마음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절대 손해 보는 일, 양보하는 일은 없고, 상황에 따라 견강부회식 황당한 자기 논리로 고집이 강했지만,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장점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특한 성격 때문에 속상한 것은 있었습니다.
연장자라 다 말할 순 없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 "물었더니
그녀는 다소곳하게 가까이 의자를 내쪽으로
밀고 오면서 귀엣말로
" 부장님, 제가 아까 책상 위의 노트북선, 휴대폰 충전기선, 헤드셋선, 마이크선 등이 너무 거슬리고 책상이 복잡하여 긴 선을 좀 자르면 책상 위 정리가 좀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위로 전선을 잘랐더니 전원이 나가더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왜 자기가 가위 들었을 때 전원이 나간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고.....
부장님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그러지 않았다고 이야기 좀 해 달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전기의 성질에 대해 문외한인 한 문과의 우수생(?)다운 그녀의 해명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같은 교과 동료가 가져온 커피 한 잔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음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