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는 사범대 졸업을 앞둔 그해 봄 교생 실습을 나갔다.
우리나라 민주의 봄은 멀었지만 학교 교정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봄기지개를 펴고 있었고 교정에 핀 하얀 목련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 설레게 했다.
정주가 학교배정을 받은 곳이 G여자중학교였다.
다른 사람들은 좋은 학교로 배정되었다고 부러워했다. G여중은 전통 있는 명문 여학교로 교사들과 관리직으로 오는 교감. 교장선생님들은 다른 학교 근무하는 사람들보다 프라이드가 상당히 높았다.
그때 교장선생님은 인덕과 학덕을 갖춘 분이셨고, 교감은 많이 못 미치는 듯했다.
처음 인사 후 교감의 인상은 별로였다.
정주는 첫인상으로 받은 느낌이 빗나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걱정이 되었다.
정주는 교생 20 명의 대표가 되었다. 내성적이고 나서기 싫어하는데 졸지에 되고 보니 이것도 걱정이었다.
'첫 느낌 때문이었을까?'
괴팍스러운 교감이 그냥 싫었다.
대부분 그때는 교감이 교생의 학점은 쥐고 있었다.
교감은 그들에게 물질적으로 학교용품을 요구하기도 하고 교무실에 커피 음료를 정기적으로 공급하라는 등의 요구를 해왔다.
정주는 교생들과 의논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교감은 그들을 대충 하고 가라는 듯한 불편한 시선으로 대하여 정주와 교생들은 그 시선이 상딩히 불쾌하고 불편했다.
아니나 다를까 교감은 정주를 수시로 불러서
"이런 것은 자제하고 이런 것은 어떻고 아무개는
치마가 짧고, 아무개는 수업이 그게 뭐고? "하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하는 것이었다.
교생과 교생 대표란 이유로 그대로 듣고 와서 잘 전달하여 쌍방의 오해가 없이 해야 하고, 또
해당 교생에게 전하여 그것을 수정하고 보완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던 중에 보니 교감이 남자 교생하고는 농담도 잘하고 웃고 잘 지내는 것이었다.
'뭐야? 이건 성차별이야?'하고 국사 교생이 말했다.
그런데 유독 교감은 가정과 이교생을 눈에 가시처럼 대하는 것이었다. 정주가 생각하기에는 그 가정과 교생은 얌전하고 성실하여 입에 댈 게 없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주는 점심 시간 후 가정과 이교생과 교정의 벤치에 앉아서 그녀에게 말하였다.
"이샘, 교감에게 혹시.무슨 실수한 것이라도 있나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한 후 "자기도 그렇게 느낀다." 면서 "왜 자기를 고깝게 보는지 모르겠다." 라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제는 복도에서 만나 인사를 했는데 모른 척하고 지나치더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상대에 대한 감정은 쉽게 읽을 수 있는가 보다.
다음날 교감선생은 교생들과의 모임 시간에
교감이 교생 전체를 마구 나무라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훈계하자. 그녀가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정주는 이교생에게 눈짓으로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었다.
이교생은 정주를 잠시 쳐다본 뒤 얌전한 저음의 목소리로
"교감선생님!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공개적으로 이야기해 주십시오. 우리가 안 한 게 뭐 있습니까?"
하며 예의 바르고 또렷하게 요청하는 용감함을 발휘했다.
그때, 교감선생은 답변은 않고 버럭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버벅거리더니 "선배교사에게 대드는 것 봐라"라고 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아래 위가 읍써" 하면서 회의실 문을 꽝 닫고 나가는 것이다.
그 일 이후 남은 3주의 교생 기간은 허점 보이지 않고 책망 듣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 애쓰는 물고기 같은 마음으로 보냈다.
수업 외에도 학교 내에 쌓인 일들을 처리하는 용역체 직원처럼 일했고. 교감선생은 작정한 듯 주번교사의 임무가 부실해도, 다른 교사들이 잘못해도, 교실의 청소가 안 되어 있어도, 학생들이 시끄럽다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교생들을 탓하고 마치 동네북처럼 못살게 구는 것이었다.
학습자료가 없고 또 귀하던 그때 도서관에 비치할 학습자료 제작을 요구하기도 했다. 부당하다고 여겼지만 학습자료이니 모두 밤샘을 하여 최대한 만들어 가기도 했다.
정주는 다행히 아버지가 교사로 계신 덕분에 붓글씨로 학습자료인 괘도를 5개나 만들어 주셨기에 그것을 학교에 기증하였다.
교생은 실습 학점을 이수해야 발령을 받을 수 있으니 참고 건너야 하는 통과 의례여서 더 심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주를 비롯한 교생들은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것이다.
4주의 훈련 기간이 끝나는 날 정주를 비롯한 교생들은 속이 탁 트이는 듯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서 또 그들은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모 대학 밑에 있는 고급 숯불 소갈비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집은 꽤 유명한 고급고깃집으로 인근 대학교수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가정과 이교생이 추천한 장소였다.
80 년대 대학생이 소갈비를 먹는 것은 사치라 여기던 때였지만. 그날 그들은 의기투합하기로 했다.
그날 이교생은 고기 씹듯이 잘근잘근 교감을 씹으며 화를 삭이었다. 그녀는 교감이 자기를 못 살게 군 이야기를 마지막날 해 주었다. 그들 모두 놀라며 공분했다.
그녀가 숯불고깃집 딸인걸 어떻게 호구조사 하고 알아내었는지 교직원 전체 회식을 그녀에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날은 그의 거지 근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고 가정과 교생은 교직을 버리기로 작정한 날이기도 하였다.
추접다 교감이여! 남의 꿈을 소멸시킨 사람이여!
그해의 찬란한 4월의 봄은 잔인한 4월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