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하는 ‘사막’
그날은 그믐날이었다.
아부다비에서도 끝 쪽, 인적이 드문 사막으로 갔다.
김미루 작가의 <문도선행록>을 읽다가 사막에 가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나의 첫 사막행은 아부다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전거를 타다 길을 잃고 마주한 그 사막.. 일 년 중 가장 뜨거운 때에 만난 사막은 내 맘속에 강렬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이제 날이 제법 선선해지기도 했고,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속에 잠시나마 젖어있고 싶었다.
차로 1시간 20분을 달렸다. 아부다비 도심에서 벗어나며 조금씩 보이는 모래 곡선들..
차로 달리며 본 모래 곡선은 바다와 닮아 있었다.그것은 마치 일렁이는 파도의 모습 같았다.
밀키웨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해 만난 높고 낮은 모래 곡선들...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해는 뉘엿뉘엿 지는 장면을 아주 가까이 눈앞에서 마주했다.
발걸음을 옮겨 모래가 많이 쌓여있는 곳으로 갔다. 신발을 벗고 따뜻한 모래를 밟았다. 이제는 뜨겁지 않은 모래, 수분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래... 사막 중심에 있는 모래는 부드럽고 그 색은 붉은 갈색이었다. 내가 알던 모래색과는 조금 다르구나..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모래 위를 뛰다, 걷다, 급기야 누워서 구르기까지 했다. 아이들이야말로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존재구나 싶었다. 내가 더 닮아가고 싶은 순수한 존재들...
모래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다. 경사가 없어 보이던 모래 언덕을 오르는데 발이 푹푹 빠지며 숨이 차올랐다. 꼭대기에 오르자 '우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래에서 보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
가까이, 그리고 멀리 보이는 모래 곡선들이 파도를 치고 있었다. 파도는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움직였다. 나는 높은 언덕에 앉아 그 바람을 맞았다.
고요한 모래 언덕 위. 사람이라고는 없는 곳, 모래와 태양빛, 바람만 존재했다.
순간 뭉클해져오는 마음...태초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대자연 속에 내가 점처럼 찍혀있었다. 한없이 작아 보이는 나... 계속해서 바람이 불고 언덕 위에서 아래로 모래들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앉아있는 내 다리 위로 모래들이 덮였다.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모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곳에서는 모난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이 불면 모양이 바뀌는 모래언덕들... 그 위에 내가 있었다. 바람이 빚어낸 작품들은 그 모양이 둥글둥글했다.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쉬며 내가 숨을 쉬고 있구나 했다. 옛 수도승들이 사막으로 수행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되는 순간...하루하루를 살며 이렇게 내 호흡을 민감하게 느껴 본 적이 있었을까?
대자연 속에 머물 때에는 감각이 활짝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온몸이 숨을 쉰다. 신체 각 부위들이 이완되는 순간들, 눈과 귀는 열린다.
그 순간 빈 마음이 된다. 열린 마음은 순수한 기도가 되어 나온다. 찬양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날 입은 러닝셔츠 그리고 오래되어 보풀이 일어난 카키색 면바지.. 가벼운 옷, 매일 입어 편해진 옷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바람이 내 몸을 스칠 때에도 거슬림이 없었다. 그 느낌을 잊을 수 있을까? 옷도 덜 사 입고 음식도 덜먹고 사람들을 덜 만나더라도 이렇게 ‘숨’쉬고 살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소로우가 떠올랐다.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그 또한 감각이 열리는 경험들을 하였으리라.
이날 나는 잠시 동안 사막에 머물렀지만 온몸의 감각들이 깨어나는 경험을 했다. 눈으로 보이는 모래 언덕, 코를 스치는 따뜻한 공기, 바람의 소리, 태양의 온기, 그리고 적막...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내 몸에 그리고 마음에 새겼다.
해가 다 넘어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드러누워 바라본 하늘에는 별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고 모래언덕과 하늘의 경계면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사진기 셔터를 여러번 눌러보았지만 사진에 담기가 어려웠다. '내 눈에 잘 담자. 오랜만에 올려다보는 밤하늘을...' 눈에 담은 별들은 마음에 남았다.
‘한국에서도 보고 있겠지?’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지난번 로마 여행을 하며 앞으로는 더 ‘감각하는 여행'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낯선 곳에서 내 몸의 감각들이 열릴 때 그 여행은 나만의 이야기가 되고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사막에서 보고 느낀 것도 마찬가지인데 다녀온 후 ’기록을 남겨둬야지.’ 하면서도, 이렇게 글이 늦어진 이유는 사막의 ‘여운' 때문이다. 사막에 다녀온 후 잔잔한 여운이 밀려오는 날들을 온전히 즐겼다.
이제야 글로 남기지만 언제나 그렇듯 언어와 글은 감각 그 이상의 것을 표현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텍스트가 가진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단어와 문장으로 규정짓기 어려운 것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지난 글에서 나는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라고 표현했다.
그날은 실제로 자전거를 타다가 사막에서 길을 잃은 날이기도 했고, 그즈음 나의 심리상태의 표현이기도 했다. 내 인생시계가 잠시 멈춰버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느낌이 드는 날들이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찾은 사막은 그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사막에는 길이 없었다. 오히려 되려 내가 밟는 곳이 다 길이었다. 걷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그곳이 화장실이 되고, 배가 고프면 주저앉아 간식을 먹고.... 걷는 그곳이 길이 되지만,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바람이 발자국들을 덮어 내가 걸어온 흔적은 없었다. 나의 스승이 그러하셨듯 나도 그렇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아야지'싶었던 순간이다.
아부다비에서 좋아하는 장소들이 있다.
쉼을 주는 장소들...
아라비아만의 흐름에 놓인 Al raha 해변의 해 질 녘을 보는 것, 맹그로브 숲을 걷는 것, 그리고 사막 모래언덕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머물기...
자연 속에 있을 때 나는 가장 나답다.
머릿속을 채우는 일 보다 감각을 열어가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감각하는 여행, 감각하는 일상! 감각하는 관계!
말과 글 너머 감각을 깨우는 여행을 해야겠다. 내 친구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