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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r 13. 2024

아부다비에서 온 편지(8)

세 명의 구세주

내 글 <내 기도엔 짠내가 난다>를 읽고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이런 글을 계속 쓰면 대박 칠 것 같은데?"

으잉? 뭔 소리지?

예상치도 못한 지인의 이야기에 뭘까? 하며 내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이어지는 그분의 이야기 “글이 살아 있어. 생생해."

 울다가 설움이 복받쳐 노트북에 바로 두들겨 댔다고 하니 “그렇지?” 하면서 글의 생생함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일깨워주셨다.

다음 날, 다시 글을 읽어 보았다. ‘아 그렇구나. 생생함을 글로도 전할 수 있는 거구나.’

자연스런 글, 살아있는 글, 가공되지 않은 글을 쓰려면 매일 써야겠다 싶었다.

나는 향과 기억에 대한 강의를 앞두고 있었다.

미루고 미루던 아로마테라피 강의를 할 날이 다가온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내가 향을 좋아하게 된 이야기? 아니면 향의 원론적 이야기들?

아이고 모르겠다. 그냥 내 이야기를 하자.

경주에서 강의를 할 적에도 강의 앞두고 꽂히는 책 한 권을 읽곤 했는데. 이번 온라인 강의를 앞두고도 책 한 권에 꽂혔다. 우연일까? 우치다 타츠루의 <소통하는 신체>를 읽고서는 강의의 가닥이 잡혔다.

그리고 살바토레의 책 개정판에 추가된 ‘미묘한 아로마테라피’와 영(성)적 삶에 대해, 기억과 향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주제가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내 생활 이야기다.

요가 수련, 호흡 수련, 내 기억 속 향기와 기억 속 사람에 관한 이야기...

막상 강의 시간이 다가오니 좀 떨렸다. 온라인에서의 강의는 처음인 나, 우리 집 철학자님 둘째에게 물었다. "은유야 엄마 좀 떨리네 어쩔까? " 했더니 "하하하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해봐. 잘 할거야."하는거다.

그래,  자연스럽게.

시간이 되어 향과 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강의를 열었다.

'사람들이 향에 관심이나 있을까?' 하는 내 의심이 무색하게 꽤 많은 분들이 줌으로 접속하셨다.

강의 시작 전에 한 분께서 넌센스 퀴즈를 내셨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을 뭐라고 할까요?” 나는 손을 들고 “변한 사람” 했는데, 땡! 80점이란다. 일 본 사람! 하하하. 유쾌한 분! 오늘 강의 중 내 구세주 1번.

 웃으며 기분 좋게 강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준비한 이야기들을 정성스레 나누었다.

'미묘한 아로마테라피'이야기를 괜히 꺼낸걸까?‘ 한 시간 강의를 마치고 나니 남은 한 시간 동안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저.. 죄송하지만 저는 아로마테라피 학도이지 학자가 아니라고요. 질문은 사절이에요.'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럼에도 갈수록 질문의 강도는 더 세졌다. 농도 짙은 질문들, 머리가 하얘진다.

'아 이번 강의는 망한 건가...'

하고 생각하는 중에 새벽 수련팀 선생님 한 분이 진지하게 소 똥 냄새에 대한 기억 이야기를 주셨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하고 나는 그만 풉하고 웃어버렸다.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 유머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 우리를 이완되게 한다.

그 후 또 한 분은 아로마테라피가 '영(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을 하셨는데, 나는 ’몸을 이용한 수련으로 영적인 부분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드렸다. '아, 또 망했나?'하던 찰나에 똥 이야기 주신 선생님이 "저는 왜 믹스커피를 마시고 양치할 때 입에 똥내가 나나요?" 하고 질문하는 게 아닌가? 아, 이런 폭소 터지는 질문이라니! 나는 그만 무장해제 돼버리고 말았다.  웃음이 또 터지고 만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저는 첨 듣는 소린데요?" 하며 한껏 올라간 입꼬리로 답변드렸다.

그분이 내 구세주 2번이 되시겠다.  최고의 명상 상태에 이른 사람은 진지함이 아니라 유머와 웃음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라 했던가?

그분은 아마 최고의 단계에 계신 분 같다.

강의 후 지인이 연락을 주셨다.

"자연스러웠어."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오늘 난 온라인 공간에서 자연스러웠고 사람들과 교감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황홀한 경험을 했다.

그걸로 됐어!

우리 집 철학자님 둘째의 예언(?)대로 나는 "자연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구세주는 한 명 더 있었다.

예언가이자 철학자 최은유 선생.

세 명의 구세주가 아로마테라피 학도 하나를 구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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