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 Oct 09. 2024

없지만 괜찮아!

두 스승님의 기막힌 '무소유' 이야기


둘째의 영어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너희 딸은 정말 웃겨.” 내가 왜냐고 묻자, 수업하며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

영어를 배우다 번데기 발음(th)을 가르쳤는데 아무리 반복해도 안되더라는 거다. 그러다 은유가 선생님한테 “Look! I don’t have teeth”하고 말했다는 게 아닌가. 선생님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아무리 해보려 해도 혀를 아래위 이 사이에 끼워 발음해야 하는 번데기 발음은 안되었던 것이다. 앞니가 몽땅 빠져버린 은유의 슬프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다.


은유는 아직 한글을 모른다. 한국에서는 1학년이다. 어쩌다 이제 시작해 보는 어학. 한글, 영어, 아랍어를 동시에 배우고 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식당에 들어가다가 은유가 무작정 문을 밀었는데 뒤에 친구가 “야 너 글 안 보여? 당기시오라고 되어있잖아.”하고 말했다. 은유는 당당하게 “야. 나 글 몰라.”하며 문을 당겨 열었다. 뒤에 있던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어쩜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한동안 은유는 다니는 국제학교에서 그림으로 대화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기본 소통은 가능한 정도가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말이 안 통할 때면 그림을 그려 보여주곤 했다고 한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답답할 수 있겠으나 스무고개라도 하는 것처럼 그림으로 소통하는 은유를 보며 정작 본인은 즐기고 있구나 싶었다. 최근에는 저녁 시간에 30여분 앉아서 엄마에게 한글을 배우는 은유. 전날 배운 걸 다음날이면 까먹는다. 매일 잊고 또 배운다. 나는 딸에게 “은유야, 다람쥐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넣어봐.”했다. 그러자 은유는 다람쥐 글자에 두 손을 모아 갖다 대더니 다시 손을 자기 이마로 가져와 붓는 시늉을 했다.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너 뭐 하는 거야?”했더니, “엄마가 머릿속에 넣으라며?”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아이. 순간 나도 모르게 우아.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운 글을 또 까먹기 싫어 손으로 떠서 머리에 담다니… 저런 마음이라면 좀 천천히 해도 잘 배울 수 있겠다 싶었다. 매 순간 작은 스승에게 배운다.


그리운 경주의 교회

큰딸이 경주에 다니던 교회를 그리워했다. 꿈속에서라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만 꿈에 나오지 않는 안타까움을 안고 그림을 그렸다. 늘 곁에 있어 당연하게 여겼던 공간이 이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나 또한 마음의 쉼터 같았던 사랑하는 교회가 그리웠던 날에 은서는 그림을 그리며 교회의 텃밭, 건물, 해 질 녘을 떠올렸다. 멀게 느껴지던 것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그림을 통해 따뜻하게 채워졌다. 아이의 그림 한 장에 눈시울이 붉어지던 순간이었다.


앞니가 없지만 '나는 앞니가 없노라.' 말할 수 있는 당당함, 글을 모르지만 글을 두 손으로 퍼 담는 재치와 여유, 곁에 없는 교회를 그림의 힘을 빌려 눈앞으로 소환해 버리는 능력(?).

두 스승님은 우리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당당하게, 마주하며 또 담담하게 살아보자고 한다.

나에게는 무엇이 없을까? 없지만 괜찮은 나날들을 보내어 보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기 수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