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이 불러온 기억
“한국에는 가을이 왔어.” 오랜 친구의 한 마디에 나는 그만 우울해지고 말았다. ‘가을이라고? 여기 내가 있는 곳에는 없는 그 가을?’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순간은 가을이 왔다는 말보다는 늘 감각이었다.
그 중에서도 냄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특유의 향, 바람의 결... 감각으로, 온 몸으로 계절을 느끼던 나. 한국을 떠나와 사는 여기에서, 실내는 늘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바깥은 타는 듯한 햇볕을 마주하며 지내는 내게 가을이 왔다는 말이 어찌 그리 서운하게만 느껴지던지...
하지만 이내 ‘가을’ 하니 떠오르는 향들이 머리를 스쳤다.
늘 걷던 숲길의 가을의 냄새는 낙엽이 바스러져 나는 고소하고 묵직한 냄새, 선선하게 코끝을 스칠 때 한 번 더 심호흡하게 하는 바람의 향, 넘실거리는 논의 벼들이 비벼대는 소리와 함께 전해지는 향, 때로 내가 살던 동네 옆 마을에서 전해지는 불 피우는 냄새... 그렇게 가을은 내게 향으로 기억된다.
그러고 보면 어려서부터 나는 감각에 민감한 아이였다.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만져보는 것, 냄새를 맡는 것, 맛을 보는 것, 마음으로 느끼는 것... 예민하다는 말보단 감각적으로 민감했다는 표현이 더 좋을 것 같다. 유년 시절 나는 시골의 한 작은 마을에서 학교를 다녔다. 한 시간 남짓 걸어야 도착 할 수 있는 학교가는 길은 나의 감각 여기 저기를 열어 준게 아닌가 싶다. 또 시골 집에서는 아침마다 맡는 엄마가 밥 짓는 냄새, 아빠가 면도하신 후 몰래 맡아보았던 면도날의 내음, 우리 집 마당 강아지들 똥냄새... 냄새로 기억되는 유년시절을 떠올린다.
혼란의 20대를 보내던 때를 기억한다. 타지에서 마음 둘 곳 없이 직장 생활하던 때에 나는 ‘엄마가 보고 싶다.’ 생각하다가 엄마의 향을 떠올렸다. 다름 아닌 비누의 향. 엄마는 오이비누를 즐겨 쓰셨는데, 갑자기 어린 시절 그 엄마의 오이비누향이 떠오르는 것이다. 마트에 가서 오이비누 하나를 사 왔다. 욕실에 두고 아침, 저녁 씻을 때 그 비누를 양손에 뱅글뱅글 돌려 거품을 가득 내고는 몸 이곳저곳에 묻혔다. 엄마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값싼 오이비누 하나가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순간이었다.
한동안 줄곧 오이비누만 썼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모를 거다. 내가 향으로 엄마를 기억하는 줄은..
몇몇 친구들이 나에게 “이 향을 맡으니 네가 그리워.”, “너한테 나는 향이 있어.”하고 말한다거나, 큰딸 은서가 “나는 엄마 냄새가 참 좋아.”하고 말하는 것.
나에게 어떤 향이 나는지 나는 모르지만 상대는 안다. 나에게만 나는 냄새가 있다는 것. 그 냄새로 나를 기억해 준다는 사실이 가끔은 맘속 깊이 벅참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며칠 전 근처 마트에서 로즈마리를 사 왔다.
먹기도 하고 또 만지고 싶어 조금 사 왔는데, 책상에 앉아 로즈마리를 매만지다가 휘리릭. 순간이동하듯 경주에서의 생활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게 아닌가.
아로마테라피를 배우고 전하던 시절, 아마도 그때에 로즈마리와 라벤더를 가장 많이 만졌던 것 같다. 로즈마리로 만난 사람들이 기억났다. 그리고 그때의 분위기와 나누었던 이야기들도 떠올랐다.
치매 환자분 만나 로즈마리를 전해드렸던 기억도 떠올랐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으면서도 향은 우리의 기억을 꺼내온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들은 향과 기억 간의 상관관계를 알려주곤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은 고모의 집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다가 불현듯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추억에 잠긴다.이것을 프루스트 효과라고하는데, 다른 감각과는 달리 후각은 대뇌와 직접 연결 되어 있어 향으로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향은 그렇게 오래된 기억을 불러오기도 하고, 또 향을 맡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자발적 기억’이라고 불리는 이것 때문에 우리는 때로 추억에 잠겨 슬프기도, 또 기쁘기도 한 것이다.
요즘 SNS에 ‘향 이야기’를 자주 했더니, 지인들은 내게 “향수병이라도 걸린 거냐”며 물어왔다. 전혀 아닌데... 나는 그저 향을 잘 맡고 좋아할 뿐.
중동지역에 와 지내는 중에 맡았던 가장 기억에 남는 향은 이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 낸 향수의 향이다. 뭐라고 표현은 못하겠지만 중동 지역 사람들은 우디 하면서도 스모키 한, 그러면서도 조금은 달큰한 그런 향의 향수를 많이 쓰는 듯했다. 뜨거운 기후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특유의 땀냄새를 없애보려는 목적인 것 같다.
아마도 다음에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이 향으로 아부다비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부다비 온 실내 곳곳에서는 이 곳 특유의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내가 느끼려 하지 않아도 향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음식의 향, 욕실의 향, 빨래의 향, 등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향들.
고대부터 향은 제사할 때 신과의 연결을 의미했고, 시신을 보관할 때 방부용으로도 사용했으며 또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얼마 전 두바이 여행을 갔을 때 올드시티 전통시장에서 오만산 프랑킨센스를 사 왔다.
여기서 가까운 나라들의 산악지대에서 온 프랑킨센스들을 만져보고 집으로 가져왔다.
프랑킨센스 수지 굳은 것을 만지다가 잠시 성경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지금이야 돈만 있으면 쉽게 아로마 오일들을 접할 수 있지만 그때에는 귀한 것들이었겠구나 싶었다.
도서 <식물적 낙관>에는 ‘각자에게는 각자의 힘이 있다’는 문구가 나온다. 어디 식물뿐일까? 식물의 향으로 만든 에센셜오일이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 깊은 곳을 어루만져 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람은? 각 사람에게도 그만의 향기가 있지 않을까?
향기로운 사람, 향기 나는 삶을 사는 사람.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에게 어떤 향기로 기억될까?
어떤 이는 ‘향은 영적이고 시적이다.’하고 말한다. 거창하게 들리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가을이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도 다양한 기억들이 소환되는 걸 보면 말이다.
’가을 아침‘ 노래가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