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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r 08. 2021

어머니를 쫓아서

 “어디 가젠 헴시냐? 오지 말라게! 일허래 감시난 집에서 놀암시라부져.”

    (어디 가려고 하니? 오지 마라. 일하러 가니까 집에서 놀고 있어라!)


  어머니는 정말 귀찮다는 듯이 때릴 것처럼 당신 팔을 휘두르며 나를 떼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몇 걸음을 떼면 울면서 다시 쫓아갔다. 그러면 어머니는 작은 돌맹이를 내 발치 쪽으로 던지고는 또 오지 말라고 고함을 치시며 집에서 멀어져갔다.


  올래에서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떠나보내었던 나는 울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나 홀로 마당에 있고 보니 마당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서워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무작정 울면서 올래를 내달려 신작로로 나갔다. 어머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지 몰라 막막해 울었다. 신작로 앞에 있는 젬마네 가게를 쳐다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갈매기가 하늘을 날아갔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엔 조그만 게들이 검은 바윗돌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을 타고 파도 소리만 들려왔다. 어쩔 줄 몰라 한참을 울면서 신작로에 서 있었다. 때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아저씨가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는지 자전거 뒤에 태워주셨다.


  어머니는 일곱째까지 내리 딸을 낳았다. 그 일곱째가 나였다. 마뜩잖았던 딸자식이라, 어머니 품에 안겨 젖을 덜 얻어먹은 탓이었을까? 나는 어머니와 떨어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냥 싫을 정도가 아니라 온 세상에서 떨어져 나오듯 무서운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러기에 그날도 필사적으로 어머니 몸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억지로 떼 내려고 그렇게 밀쳐대었기에, 여섯 살, 그날의 기억은 내게 또렷하게 남았다.


  아저씨의 자전거를 타고 도착해보니 멀리서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모심기를 하고 있었다. 그날 하루종일 바쁘게 모심기를 해야 해서 나를 돌볼 여유가 없었나 보았다. 그렇게 떼어 놓으려 애썼건만, 마침내 눈물은 그렁그렁한 채로 자전거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선, 어머니는 혀를 차셨다. 


  “아이고 나가 겅 말려신디, 여기까지 쫓앙 와싱게..”
   (아이고 내가 그렇게 말렸건만 여기까지 쫓아 왔구나.)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방해가 될까 봐, 그랬었나 보다. 그런데 마침 논 옆의 들판에는 나와 같은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나는 이제 어머니 곁이라 안심이 되어서 아이들이 뭘 하는지 쳐다보았다. 


  비가 온 지 며칠 안 되어서인지, 움푹움푹 들어간 웅덩이들이 여기저기 연못처럼 펼쳐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개구리가 여기저기서 개굴개굴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런 개구리를 잡느라고 한창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개구리를 가까이서 쳐다보았다. 두 눈을 뚜루룩 굴리는 거 하며 개굴거리다가도 다가가면 입 다물고 조용히 한다. 잡으려고 손 내밀면 폴짝 뛰어버리고, 재수 좋게 손에 잡았을 때 미끌거리는 느낌에 오싹해진다. 동시에 개구리는 두 다리를 쫘악 벌려서 도망가려 한다. 그때 마주했던 개구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개구리가 자글자글 울어대는 소리도 내게는 그때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친숙한 소리다.


  개구리 잡기를 하며 신나게 놀다가 점심시간이 되었다. 생각지도 않은 보너스처럼 누군가가 준비해온 밥과 반찬을 얻어먹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들판에서 열심히 뛰어놀다가 아무렇게나 펼쳐놓고 둘러앉아서 먹으면, 밥에 된장에 풋고추나 상추쌈만 먹어도 맛이 있는데, 돼지비계를 넣은 찌개라니.

  겨울에 딸기를 먹는 게 어려웠던 시절은 비싸게 하우스 딸기를 사면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고 감귤이 귀했던 시절엔 귤이 그렇게 맛있는 것처럼. 매일 밥과 김치만 먹던 사람은 고기의 흔적만 닿아도 그 냄새를 느낄 수 있고 맛이 다르다는 걸 안다.


  일을 끝낸 저녁 무렵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었다. 어머니는 잠시 나를 등에 업으셨다. 나는 땀에 젖은 어머니의 축축한 등에 코를 박았다. 어머니의 냄새와 어머니의 살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날 그 순간만큼은 어머니가 온통 내 차지인 듯한 기분이 들어 두 팔로 어머니를 꼬옥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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