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바리우다 Mar 03. 2021

벗나무 아래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외국인 노동자가 안산으로 가는 길을 내게 물었다. 당황해서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바꿔 타는 노선을 알기 쉽도록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가 아무 탈 없이 원하는 곳에 도착하길 바랐다. 어쩌면 그는 불법 체류 노동자인지 모른다. 그도 누군가의 아버지일 것이다. 그에게 해주고 싶은, 그러나 내놓지 못한 말이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은 두 가지다. 밥을 먹을 때면, 아버지 밥상 따로 어머니와 우리들 밥상 따로였다. 네다섯 살인 나는 멋모르고 엉거주춤 아버지 밥상으로 옮겨 앉아서 두툼한 생선살을 집어 먹었다. 그때 아버지가 국에 있는 고기를 건져선 후후 불어 내게 주셨다.


  어느 날 넷째 언니와 나는 일찍 잠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잠옷은커녕 내복도 변변찮은 시절이라 팬티만 입고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 흔들어서 우리를 깨웠다. 아버지셨다. 잠이 덜 깬 채로 우리는 부엌으로 불려갔다. 화로에는 불고기가 타고 있었다. 밤늦게 퇴근한 아버지가 돼지를 사 와서, 양념을 하고 굽고 있는 거였다. 한 입씩 넣어주는 불고기의 맛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잠자다 일어나서 먹는 음식이면 맛도 못 느꼈으련만, 고기 꼴을 보기 어려운 1960년대인지라, 향긋하게 타들어가는 살 냄새, 적당한 기름기와 함께 달콤한 양념장이 곁들여져서 지금껏 내가 세상에서 먹어본 음식 중 제일 맛있었다. 


  내 나이 여섯 살에 아버지는 일본으로 밀항(불법 취업)을 하셨다. 초등학교 교사 월급만으로는 아이 여섯을 교육시킬 수 없다며 벚나무 아래서 우리와 헤어지신 것이다. 그 벚나무는 아버지가 집을 지으면서 손수 대문 밖에 심으신 거였다. 그것들은 대문 양쪽에 수문장처럼 자라서 봄이면 화려한 그늘을 만들어주곤 했다. 


  중학교까지 다닐 동안 나는 벚나무 앞에 있는 커다란 돌의자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다. 바람에 벚나무가 휘날리면 그늘이 흔들거리고 그늘이 흔들거리면 나는 집을 떠난 아버지가 떠올랐다. 혼자 일본을 떠도는 불법 체류자인 아버지가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느껴졌다. 

  그 생각을 하면 가슴 속으로 싸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쓸쓸하고 허무한 무언가가 내게로 스며들었다. 아버지가 안 계신 빈자리는 컸다. 어머니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꾸려나가야 했기에 밤이면 한숨을 쉬셨다. 그나마 밤에는 어머니가 계셨다. 낮에는 밭일을 하러 나가셨기에 나 혼자 집에 남아 빈 마당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때면, 외로워서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그러나 벚나무 아래의 기억이 그렇게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벚나무가 있는 대문은 기와로 덮인 데다 육중한 나무로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기와지붕으로 인해 항상 그늘이 져서 멍석을 깔고 책을 보기가 좋았다. 게다가 나는 서까래에다 밧줄을 달아 묶고서는 그네를 탔다. 그곳에서 때때로 언니와 만화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거나 친구들과 그네 타기 시합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면서 우리는 시내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벌어 보낸 돈으로 새집을 지었다. 새집에는 마당이 거의 없었고 당연히 벚나무도 없었다.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학교와 학원과 집을 오가느라 바빴다. 


  15년 만에, 아버지가 돌아오신 곳은 시내에 있는 새집이었다. 아버지의 입에서는 “아이고 집 참 좋다”라는 말씀이 새어 나오셨다. 당신이 사신 일본 집은 낡고 초라한 곳이었던 가보다. 예전에 당신이 손수 지었던 그 나무 많은 마당 넓은 기와집 대신에, 집만 덩그마니 있는 새집을 좋다고 하셨으니.


  벚나무가 있는 집은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 당신은 돌아오셨지만 젊은 날의 패기와 열정은 일본에서의 고된 노동으로 다 빨리고 시내에 있는 집 한 채만 남았다. 당신은 노년이 되셨다. 떠날 때 세 살이었던 아들은 18세의 청년이 되었고 낯선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싫어하였다. 막연히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나도 더는 아버지를 그리워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게 되었다.


  여름이면 남의 트럭을 빌려서 바닷가로 나가 자녀들과 함께 고기를 잡고 불고기를 구워주셨던 젊은 아버지는 일본에서 사라졌다. 대신 아무 것도 함께 할 수 없는 힘이 빠진 늙은 아버지가 남았다. 돌아와 아들과 함께 행복한 노후를 즐기시려던 아버지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고 일본에서 얻어온 병으로 돌아 오신지 5년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돈을 버는 것은 에너지를, 힘을, 자신의 청춘을 불태우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까지 모두 다 바치지는 말기를 아버지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똥 돼지 변소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