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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Feb 20. 2021

순이 언니

삐걱.. 대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어슬렁거리며 욱이 아저씨가 들어왔다. 욱이 아저씨는 순이 언니의 남편이었다. 순이 언니는 비록 피를 나누진 않았어도 오래 같이 살던, 피붙이 이상으로 좋았던 언니였다. 언니는 유순한 사람이었고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 얹혀살다가 어머니가 결혼까지 시켜주었다. 시집갔던 순이 언니가 그날 우리 집에 와 있었는데 그 언니를 찾아온 것이다. 


  집안으로 들어온 욱이 아저씨는 흐릿하게 늘어지는 소리로 술 냄새를 풍기면서, 순이 언니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그는 한쪽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상체를 건들거리며웅얼거리다 느닷없이 언니의 뺨을 내리쳤다. 

  “무사 영 허염수과. 경허지 맙서게~.” (왜 이러세요. 그러지 마세요) 

언니는 잔뜩 쪼그라들었으나 공손하게 남편을 달래기 시작했다.     


  일곱살인 어린 나이임에도 나는 직감적으로 무서운 생각이 들어, 남동생을 데리고 작은 방으로 피신해버렸다.

  ‘아, 하필이면 이럴 때 어머니는 솔잎을 긁으러 갈게 뭐람.’ 아침 일찍이 동네 사람들과 겨울 땔감을 하러 떠난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나 귀만 쫑긋하였다.

  잠시 후 미닫이문이 부서지듯 꿍꽝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동생에겐 꼼짝말라고 한 뒤에, 나는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시발년이 서방질을..”

  욱이 아저씨가 순이 언니의 목을 조르려 했다. 언니는 사력을 다해 밀쳐내고 있었다. 언니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도 울며 아저씨를 말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저씨는 의처증을 앓고 있었던 것이었다.

  잡고 밀치기를 몇 번 거듭하다가 몸이 서로 느슨하게 벌어진 순간, 눈이 벌게진 아저씨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더니 언니의 가슴을 찔렀다. ‘악’ 하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언니는 그 칼을 잡았다. 다행히 칼은 언니 가슴팍 뼈에 부딪쳤고, 언니의 손으로 넘어갔다. 나는 얼른 언니가 주는 칼을 받아 변소 옆 논두렁에 던졌다. 우리 집 식칼도 솔잎 더미 사이에 숨겨 넣었다. 


  그리고나서 나는 얼른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려 경찰서에 신고했다. 시간은 왜 이리 더디게 가는 걸까?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한참을 흘러 도착한 경찰이 무슨 일 있냐? 고 물었을 때, 아저씨는 그 앞에서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부부 싸움을 했을 뿐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순이 언니는 속 시원히 표현을 잘못했다. 답답했다. 


  나는 경찰이 얼른 아저씨를 잡아갔으면 해서 집 밖으로 뛰어나가 논두렁으로 갔다. 겨울이라 논에는 물이 말라 있었고 누렇게 뜬 잡풀들이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나는 변소 담벼락이 올려다보이는 지점을 가늠해서 그 칼을 찾아냈다. 그리고 경찰 아저씨께 내밀었다. 순이 언니는 가슴에 난 칼자국을 보여주었다. 그제야 경찰은 아저씨를 데리고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욱이 아저씨가 다시 왔다. 그찮아도 우리 집은 외따로 떨어져 있어, 대문만 닫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는 곳인데… 다시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속으로 끊임없이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아저씨는 또 술 냄새를 풍기며 언니를 내놓으라 했다. 

  게다가 안고 있는 제 아들을 아궁이 옆 솔잎 더미에 내던졌다. 아기는 놀랐는지 울어댔다. 


  “야이 무사 영험시니?”(왜 그러니?) 

  어머니도 아저씨 눈치를 보며 떨어진 아기를 안아 달랬다. 아저씨는 희죽 웃더니 부엌 밖으로 나갔다. 대문으로 걸어 나가나 싶더니, 문 앞에 서서 표창을 꺼내 들었다. 내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표창을 들더니 대문을 향해 던졌다. 표창이 나무 대문에 맞고서 떨어졌다. 그러다가 칼날이 날아가서 탁 꽂히기라도 하면, 손뼉을 탁치며 어깨를 들썩였다. 기분이 좋은지 씩 웃으며 뭐라고 뇌까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다행히 아무 탈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대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나는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마음은 조마조마하고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던 어느 날 순이 언니가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언니, 이제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맙써. 너무 겁나마씨!”(오지 마세요. 겁이나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어머니와 얘기를 끝낸 언니는 송아지 같은 슬픈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집을 떠났다. 우리 집에서만 나간 게 아니었다. 매 맞으면서도 순종하던 언니가 아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며칠 후 욱이 아저씨가 찾아와서 또다시 대문에다 표창 던지기를 시작했다. 그럴 즈음 큰 언니 연락을 받고 동네 한량인 동철 오빠가 나타났다. 오빠는 힘자랑에선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일등 꾼이었다. 동철 오빠가 욱이 아저씨 표창을 뺏었다. 그리고 아저씨의 목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발이 딸려 올라가면서 아저씨의 목에서 캐개캑캑하는 소리가 났다. 숨쉬기 어려운 것이다. 오빠는 살짝 아래로 아저씨를 내렸다 올리기를 반복하다가 다시는 안 오겠다는 아저씨의 다짐을 받고 풀어주었다. 그날 이후 욱이 아저씨는 우리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로 반년이 흘러서 남의 집 과수원 지기를 하던 욱이 아저씨가 농약을 먹고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내 죽을지 모르는 위협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불쌍하다는 마음조차 안 드는 것이었다. 


육지로 도망갔던 순이 언니도 돌아왔다. 그 후에도 언니는 삶의 우여곡절을 덤덤하게 견뎌내었다. 삶에 어떤 고난이 닥쳐도 쓰다 달다 말 한마디 없이. 70세가 넘은 지금도 물질을 할 뿐 아니라 농사일까지 열심이시다. 


  지난겨울, 아버지 제삿날이 되어서 오랜만에 순이 언니를 보았다. 언니는 그날도 언니 집에서 따온 자잘한 감귤과 말린 무시래기며 톳 등을 들고 나타나셨다. 


  “이거 생기기는 영해도 막 맛좋나.” (생김새는 그래도 맛이 좋아)

  언니가 먹어보라면서 꺼낸 감귤은 언니 말대로 겉보기와는 달리 파는 것보다 향기도, 맛도 훨씬 좋았다. 언니가 키운 거여서 그런지 언니를 닮은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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