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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Sep 25. 2022

빨라스 데 레이 일기

뽀르또마린~빨라스 데 레이

22.9.23.금(순례 34일차, 7시간 소요)

뽀르또마린~빨라스 데 레이 (24km)

뽀르또마린 산 니콜라스 성당

아침 7:20분, 엊 저녁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던 산 니콜라스 성당 주변이 고요히 잠들어 있다.


길을 걸어 나서니 이곳저곳에서 순례객들이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어간다.

3일 연속 안개 낀 아침이 계속되는 건 가을 탓인가? 아님 강 때문일까?

작은 다리를 건너 뽀르또마린 강을 건너고...                         언덕 길을 오르다


모든 것이 안개비에 젖어있다. 그 속을 걷는 많은 사람들이 앞서서 사라져 간다. 

모든 것이 안개비에 젖어있다.  

새들은 즐겁게 지저귀고 공기는 차가와서 바람막이 위에 가을 옷을 덮고 걷는다.


나무며 풀 숲의 냄새를 맡고 새 소리를 듣는 아침은 늘 청량에 젖게 하는데, 오늘은 간간이 가축 분뇨 냄새가 나는 목축을 하는 마을을 지나다.

유달리 사람이 많은 데다, 까페가 없어 볼일 보러 풀 숲에 갔다 튀어나오는 모습을 몇번이나 보다. 차분한 마음이 사라지다.



나무 숲도 지나고 마을 길도 돌고, 도로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탁탁탁 하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70대인 할아버지가 스틱을 옆에 낀채 뛰고 있다.


사리아부터 100km를 뛰면서 가시려나?

다부진 근육을 보니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신 듯.. 그러니 나도 꾸준히 운동해야겠다.

70에 친구들과 다시 산티아고를 걸으면 어떨까?

길가로 줄지어 걸어가는데 70대의 할아버지가 힘차게 뛰어가고 있다.


쉴 데가 없다. 뽀르또마린에서부터 첫째 카페인 호스테리아가 나타날 때까지 7km를 모두들 걷기만 하다.


이어 까스토로 마을과 다른 까페를 지나니 귀여운 마스코트 집이 있어 아저씨께 엄지척을 했더니 반갑게 손을 흔든다.

작은 정원을 예쁘게 다듬은 아저씨.. 지나가는 우릴 흐믓하게 바라보다


다시 동산을 오르고 벤따스 드 나론 마을에 들어서다.

벤따스 드 나론 성당으로 오르는 길
사리아에서부터 걷기 시작한 젊은 부부들...앞뒤로 줄서서 재잘되며 걷다가 산티아고가 78.1km남았다는 기념석이 중요한 지, 모두 모여 한 컷.


10:50분, 아주 작은 당이 보이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름다운 성가가 울리고 있다.

잠시 기도 후 1유로를 헌금 통에 집어넣다.


( 스탬프!플리즈~)


내 말에 손을 더듬는 할아버지는 맹인이셨다.

 손을 할아버지 손 위에 포개놓고 정성껏 스탬프 찍게 하더니, 날짜도 그렇게 찍게 하셨다. 그리곤 성모님과 경당을 찍은 상본을 쥐여주며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한다.


그분의 정성..

손과 손의 접촉에서 오는 따뜻함..

스탬프..


No photo라고 써 있어서 경당 내부를 찍을 수 없었지만 그때 느껴지던 거룩하게 고양되는 마음을 그대로 스탬프에 담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할텐데..

벤따스 드 나론 경당               주신 상본들


리곤데 마리아상 우리 네의 어머니가 아기를 안은 듯, 익숙한 얼굴이다.

리곤데 마리아상


매일 걷기를 되풀이 하다보니 익숙해졌는지 들판, 나무, 길, 마을들에서 새로움이 없어지고 있다.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는 사람들을 보면 ..


<음~ 저기는 사리아에서 시작했군! 조개를 봐. 장식이 들어가 있잖아>..


이런 생각이나 들고 있으니 가야할 때가 된 것인가?

얼른 마음을 다잡고 기도하다.


어느 까페의 개미 장식


다시 산길을 지나 빨라스 데 레이에 도착하니 알베르게 주인, 마뉴엘씨가 친절하게 안내해주다.

빨라스 데 레이 알베르게
처음으로 기십 명의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순례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다.


배정받은 방에는 타이완 대학 졸업생인 버지니아와 조이가 있었다.

그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추석날에 먹는다는 달케잌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며 상냥하게 인사를 하였는데, 한국어며 일본어며 영어를 잘 구사해서 방 식구과 금방 친해져서는 깔깔거린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을까?

그 깔깔대던 나는 어디로 가고 이제는 쓸데없이 묵직해졌을까?

...

나이가 들어 사용 에너지가 줄게 되면서 반응도 느려지고 작아지는 걸 어쩌랴.

그래서 묵직해지나보다.


젊은이의 패기와 쾌활함을 부러워하기보다..


늙어가면서 ..

한계를 인정하기

다름을 수용하기

부드러워지기

그러다보면

낮은 곳에 흐르는 물처럼 편안해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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