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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Nov 26. 2022

천사는 어디에나 있다

- 스페인 론다의 여행기

  우리에게는 빨간색의 귀여운 폴로 자동차가 배정되었다. 어디에 흠집이 있는지 먼저 체크를 하는데, 뽑은 지 얼마 안 된 새 차 냄새가 났다. 새 차니까 여행하는 도중에 퍼질 염려는 없어서 안심이다. 막상 차 안으로 들어가니 시동은 뭘 누를지 몰라 다시 렌터카 센터에 가서 사람을 불러와야 했다. 주유구가 어디인지, 차량 등은 어떻게 켜는지, 휘발유를 넣는 건지 아닌지, 에어컨은 어떻게 트는지 일일이 점검하느라 시간이 갔다. 막 떠나려는 찰나 차 앞에 달린 화면에 네비게이션이 안 뜬다. 다시 달려가 네비게이션은 어떻게 켜느냐고 물었더니, 차에 네비가 없다며 구글을 이용하란다. 산티아고 순례와 얼마간의 버스 여행을 끝낸 후, 그렇게 스페인의 마드리드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나머지 15일간을 여행했다. 

    

  스페인에서 렌트카를 빌린 지 사흘째 되던 날, 세비야에서 론다를 거쳐 말라가로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날도 남편이 운전대를 잡는 순간 내 몸은 뻣뻣이 굳어졌다. 익숙하지 않은 교통체계 때문에, 벌써 몇 번 길을 헤매거나 당황스런 일이 생긴 탓이다. 무엇보다 스페인의 회전 교차로는 우리의 얼을 빼기에 충분했다. 나는 얼른 묵주를 잡고 속으로 기도했다.     

 

   “다섯 번째 출구입니다.”

   ‘에구, 또야?’      


나는 얼른 속으로 하나, 둘 빠져나가는 길을 셌다. 아무리 세어도 다섯 개가 아닌데, 그래도 순식간에 남편은 나갈 길을 택했다. 무사통과다. 그렇게 회전 교차로를 몇 번씩 거치는 동안 나는 혀가 달싹달싹 거렸다. 


  다행히 세비야 시내는 잘 빠져나갔다. 고속도로인지 일반 국도 인지 교외로 나가면 달리기는 쉽다. 겨우 한숨을 놓으며 경치 구경을 한다. 한없이 너른 들판, 어쩌다 작은 성곽도 산등성이에 나타난다. 하얀 집들을 한 무더기 지났다. 



  드디어 론다 시내로 들어가는 회전 교차로를 넘어 들어오긴 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주차장을 찾을 수 없다. 론다의 누에보 다리를 건너온 참인데 그 복잡한 길을 다시 돌아가기가 버겁다. 때마침 눈앞에는 한적한 길모퉁이다. 차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세비야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거치고 다시 론다로 들어오느라 팽팽히 긴장하던 신경이 쉴 때라고 아우성을 쳤다. 온몸이 피곤해져서 더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아, 우리는 그곳에 차를 주차하려고 천천히 다가갔다. 마침 도로 가장자리 맨 앞이 비어있다. 천천히 차를 대고서도 가게 안의 사람이 차를 빼달라고 할지 어떨지 몰라 주춤거리며 서 있었다. 5분쯤 서 있었을까? 아무런 제지가 없어 막 그 자리를 떠나려는데 나보다 나이가 든 한 부인이 다가왔다.    

  

  “여기는 주차하면 안 돼요. 여기 노란 선이 표시된 곳에 주차하면, 벌금을 내게 되어있어.”     


  그녀는 스페인 말로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나는 스페인어를 몰랐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한 다음 땅바닥을 쳐다보니 정말로 우리 차가 서 있는 가장자리에만 노란색이 칠해져 있었다.


  ‘아, 그래서 여기만 비어있었던 거구나!’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는 나를 보고 아주머니는 방긋 웃으며 떠나갔다.      

  ‘이제 어쩐 다?’      


  둘이서 얼굴을 마주 보고 주춤거리고 서 있는데 이번에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다가왔다.   

   

  “저쪽으로 돌아가면 차를 세울 데가 있어요” 

    

  이번에도 손짓해 가며 스페인어로 말을 한다. 무척 고마웠다. 다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는 차를 몰고 아저씨가 손짓한 방향으로 갔는데, 어느새 그 아저씨가 골목으로 와서는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해준다. 너무 고마워서 차를 세우고 주변에 있는 작은 가게로 들어가 음료를 찾았다. 콜라밖에 없어서 콜라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저씨는 놀이터에서 다른 남자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남편과 내가 고맙다며 시원한 캔콜라는 내미니 손사래를 친다. 한사코 내미니까 고맙다며 받았다.  

   

론다의 누에보 다리


  드디어 안심할만한 곳에 차를 세우니 기분이 너무 좋다. 우리는 웃으며 누에보 다리로 갔다. 120m의 깊은 협곡을 잇는 론다의 누에보 다리는 새것은 아니었지만, 거대한 바위 위에 서 있는 두 도시를 잇는 장엄한 다리였다.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서 그 다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도 한참 서서 구경을 하다가, 말라가로 가기 전에 점심을 먹으려고, 다리 옆에 있는 돈 미구엘 레스토랑으로 갔다. 


  레스토랑에서 소꼬리찜과 문어요리를 시키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한국인들이 들어왔다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 식당은 자릿값이 있는 건지 음식은 전망이 좋은 위층에서 먹을 수 있는데 반해 음료를 시키는 사람들은 아래층으로 내려보내나 보았다. 우리가 앉아 점심을 먹을 동안 세 팀이나 되는 한국인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다리 쪽을 향해 포즈를 취하며 음료를 마셨다. 아빠와 엄마의 사진을 연신 찍어대는 딸, 다정한 연인과 가족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레스토랑 매니저가 권해줬던 문어는 값에 비해 짠맛만 강했지만, 시원한 샹그리아 덕에 기분 좋게 잘 먹을 수 있었다. 경치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누에보 다리를 건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놀이터에 있던 아저씨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는 세웠던 곳에서 뜨뜻하게 잘 익어가고 있었다. 차 문을 열고 잠시 식힌 후에 둘 다 편안하게 자리에 앉았다. 나는 막연히 오던 길을 되돌아서 빠져나가니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안심했다.      

  차는 론다 시내를 빠져나오는 회전 교차로에 들어섰다.      


   “00 출구로 나가세요”      


  구글 안내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오른쪽에서 회전 교차로로 들어오는 차를 봤던 나는 머릿속으로 좌회전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 또한 좌측으로 회전대를 돌리며 안전하게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어라, 맞은 편에서 차가 오는 게 아닌가! 맞은 편, 차 안의 남자가 손으로 엑스 표시를 함과 동시에 한 손을 뒤로 보내면서 천천히 하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남편과 나는 어, 역주행이구나 생각하자마자 차를 세웠는데, 바로 그 순간 회전하면서 들어오는 차량이 미끄러지듯 우리 옆을 가까스로 비껴 지나갔다. 수신호를 해줬던 탓에 그 차가 속도를 줄였던 것이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충돌할 뻔한 순간이었다. 


  나는 신음 소리가 새지 않도록 오른손으로 입을 막았다. 내 가슴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행히 맞은 편에 뒤따라 오는 차가 없어서 우리 차는 유턴을 할 수 있었고 가까스로 그 회전 교차로를 벗어날 수 있었다. (거기는 이중 회전 교차로여서 지금도 남편은 그 길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순간이 지나고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천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긴박한 순간에 화내지 않고 단호하게 손으로 엑스 표시를 날리고, 그와 동시에 뒤따라 오는 차량에 워워, 천천히~라고 말하듯이 뒤로 미는 손동작을 해준 그 사람이 바로 천사였다. 외국 관광객이 많은 그 나라에서, 낯선 외국인들에게 관대하고 친절한 행동을 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인지도 모르지만......

     

  어쨋거나 나는 그날 천사를 세 사람이나 만났다. 그렇다. 천사는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나도 언제 어디서든 곤란한 사람을 위해 먼저 배려하는 천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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