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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Dec 10. 2022

이게 기적이지

_루르드 성지 순례 이야기-

  루르드 역은 대합실 의자도 몇 안 되게 작고 아담했다. 역 근처 호텔에서 20분쯤 걸어가니 정면에 루르드 성지로 향하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가로지르는 갸브 드 뽀 강은 초록빛으로 반짝이고 강 오른쪽엔 멋진 나무들과 호텔과 성곽이 보인다. 그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둘러쳐 있고 하얀 구름이 몽실몽실 걸려있다. 사진을 찍으며 성지에 도착하니 5m나 되보이는 커다란 십자고상이 나를 맞아준다.    

  

  나는 기계적으로 성호를 그었다. 저 멀리 뾰족한 종탑이 있다. 드디어 루르드 성지다. 8월 중순이라 아직도 햇볕이 강렬해서 우리는 플라타너스 기둥 옆으로 그늘을 찾아 움직이며 로사리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중앙에 팔을 벌리고 맞아주시는 성모님 모습은 평소에 내가 보던 온순하고 자애로운 모습과 달리 씩씩한 여장부 같아 낯설었다.


  오후 1:54분, 남편이 말대로라면 6분만 있으면 미사 시작이다. 남편에게 장계틀에 앉아서 미사를 보고 가자고 얘기했다. 성당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고 한쪽 구석에 대여섯 사람이 모여 서 있다. 2시가 되어도 미사는 시작되지 않는데 준비를 하는 것 같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우리는 앞에서 10줄쯤 뒤에 앉아 있었는데 맨 앞줄에 앉은 사람들이 무슨 설명을 들었는지 빠져나간다. 두 번째 줄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사람들은 나갔다. 그러다 보니 앞쪽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앞에 가서 앉지 않았음을 다행히 생각하며 낯선 성모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한쪽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성가 연습을 시작한다. 


로사리오 성당 안 미사 전 모습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내 옆에 휠체어가 들어왔다. 한두 개가 아니라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어떤 이는 앉아 있지만, 아예 누워있는 이도 있다. 듬성듬성 빠진 머리, 뼈 위에 가죽만 붙어있는 팔, 자글자글한 목주름, 힘없이 떨군 손...... 누워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또렷했다. 휠체어를 타고 온 환자 대부분 80이 넘은 노인들이었다. 휠체어는 뒤에서 밀거나 앞에서 끌 수 있게 된 장치가 있었는데 저마다 봉사자들이 붙어있다. 간호사 복장을 한 사람도 있고 일반 봉사자도 있다. 봉사자의 나이도 다양해 보였다. 성지의 샘물로 인해 치유되었다는 기적이 7천여 건에 이를 만큼 많은 기록이 있어선지, 성지 안에는 병원도 있고 환자들도 많나 보다. 이 환자들을 위해서 앞을 비워둔 거였다. 


  나이 많은 봉사자들이 나서서 맨 앞줄부터 자리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겨우 휠체어를 빠져나와서는 양 겨드랑이에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움직여서 장계틀 의자에 앉았다. 남에게 의지해 겨우 장계틀에 앉는 사람들과 그들을 앉히기 위해 한 몸이 되어 애쓰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마음에서 뭔가가 터져 나왔다.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순 없으나 맑은 샘물로 온몸을 적신 느낌, 울컥해지며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랄까? 


  이게 기적이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병원에서 성당으로 이끌고 와선 저렇게 미사에 참여하게 하다니......한없이 더디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때가 되니, 50여명이 넘는 환자들은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누워있던 환자들은 맨 앞에 그대로 누운 채로 자리를 잡았다.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셔서 이렇게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감사가 마음에 넘쳐흐르면서 미사에 임하는 마음은 여느 때보다 더 경건해졌다. 영성체 시간이 오자, 신부님은 누워있는 환자에게로 가서 성체를 배급해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저분은 하루종일 누워있다가 이곳 성당으로 나오는 것이, 가장 기쁜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겐 그런 절박함이 없기에 영성체를 하는 기쁨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남편과 저녁을 먹고 우리는 다시 성당으로 갔다. 루르드 성당의 오른쪽 한 귀퉁이에는 마사비엘 동굴이 있다. 마사비엘 동굴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묵주의 기도를 한다. 가난한 농부의 딸인 14살의 소녀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신 장소가 이 작은 바위 동굴이었다니! 


루르드 성당
마사비엘 동굴


  동굴 주변엔 거대한 촛대가 있고 촛불들이 꽂혀서 끊임없이 타고 있다. 동굴 근처에 설치된 수도관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마셨다. 물통에 물을 담아가는 사람들이 빼곡하다. 많은 기적이 일어났던 곳이라 그러겠지. 눈먼 이가 눈을 뜨고 불구의 다리가 나았으며 이 샘물을 마시고 씻음으로써 불치의 병이 나았다는 기록이 그렇게 많음에랴 누군들 기대하지 않을까? 상황이 허락한다면 나도 담아가고 싶었다. 황반변성으로 망막이 떨어져 나간다는 언니에게도, 간이 점점 더 심각해지는 동생에게도 한 병씩 선물하면 얼마나 좋으랴.


  우리는 마사비엘 동굴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반원형으로 설치된 촛불 차펠(예배당)로 갔다. 그 안에는 무수한 촛불이 타고 있었다. 우리는 차펠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곳에서는 강 건너에 있는 루르드 성당과 동굴이 훤히 보였다. 나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는 마사비엘 동굴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한 가족이 와서 우리 앞에 있는 빈 땅으로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20분이 넘도록 무릎을 꿇은 채였다. 온 가족이 매달리던 것은 맨 앞 휠체어에 앉은 형제를 위한 염원이었을까? 나는 저렇게 거친 땅바닥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절절히 기도한 적이 있었던가? 그들의 믿음이 부러웠다. 그것도 온 가족이 함께 모여와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부러웠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온 가족이 꿇어앉아 그렇게 함께 기도한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묵주기도 행렬은 밤 9시에 시작되었다.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신기했다. 촛불은 마사비엘 동굴에서 출발한 행렬에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끝도 없이 움직여갔다. 성가를 부르기도 하고 기도를 암송하기도 하면서 중간중간 촛불을 들고 경배를 올렸다. 행렬은 성당 앞 광장을 돌아 다시 마사비엘 동굴 쪽으로 향하였다.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추어 도는 기도행렬은 장엄함의 극치였다.      



  1858년 2월부터 7월까지 19번이나 어린 소녀인 베르나데트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셨다.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한 2월 25일, 성모님이 명한 대로 베르나데트가 웅덩이 물을 마시니 그곳에서 깨끗한 샘물이 넘쳐 흘렀고, 그 물을 마시고 바른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많은 기적이 일어나자 엄격한 조사가 진행되어 결국에는 교황청에서도 성지로 인정하게 되었는데 이같이 성모님이 발현하신 까닭은 '참회하고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이다.          


   “사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곳에 성당을 세우라 말하라. 이리로 행렬이 향하도록 하여라.”     


  성모님의 말씀대로, 매년 300만이 넘는 순례자가 밤하늘을 향해 촛불을 들고 기도를 한다. 나도 그 행렬에 서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매일 기도하는 이들이 있는 한, 세상은 망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촛불 기도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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