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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Feb 12. 2023

전자레인지로 지은 밥

- 밥은 사랑이다 -

  “이거 전자레인지를 돌려서 지은 밥이예요. 자주 여행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어!”

  은영 언니는 웃으며 두 접시에 밥을 담아왔다.     


  하얀 쌀밥을 보는 순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초승달처럼 예쁘게 피는 언니의 눈웃음을 따라 미소 지으며 식탁 가까이 의자를 당겼다. 고추장을 넣은 매콤한 제육볶음도 얼마 만인가! 게다가 언니는 백숙이 아주 잘 되었다며 국물이 뽀얀 닭고기를 권했다. 남편은 국물이 흥건한 닭고기를 씹더니 연신 맛있다고 했다. 언니 말대로 국물 맛이 끝내주었다. 언니는 김치가 없다며 대신 엔꾸르띠도(피클)를 내왔다.    

  

  한국을 떠난 지 40여 일째였다. 그동안에 밥을 먹은 적도 있긴 했다. 바람에 날아갈 듯하지만. 그러나 그마저도 먹은 지 보름이 넘은 시점이었다. 


  언니네 집에 초대를 받기 전날, 우리는 포루투의 동루이스 1세 다리를 건너다녔다. 그리고 그 근처 포루투 항을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에 볼량 시장 부근에서 언니 부부를 우연히 만났다. 낯선 외국 땅에서 다시 만나니 너무나 반가웠지만, 아저씨가 내일 아침밥 먹으러 오라고 친절하게 몇 번이나 권했을 때도 언니네 집에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비가 왔고 쓸쓸한 마음이 들기에 전화를 하고, 구글의 인도를 받으며 언니의 집으로 향했던 것이다.    

  

 언니가 빌린 아파트는 방 하나에 작은 거실 겸 주방, 욕실이 함께 있는 10평 정도의 작은 집이었다. 의자도 2개이고 밥그릇도 2인용이 전부라, 언니네는 우리를 초대하면서도 먼저 밥을 먹었다 했다.      


  다양한 외국인들로 붐비는 포르투라는 이 타국에서, 언니네 부부도 여행자이건만, 이렇게 밥을 차려주다니! 소담한 커피 쟁반에 담긴 밥에서 고향의 냄새보다 더한 어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한 숟갈 한 숟갈 음식이 내려가는 동안 쓸쓸했던 뭔가가 녹아내리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내 어딘가에 숨어있던 애정 결핍이 채워지는 것일까? 나는 언니의 정성이 너무나 고마워 마음이 뭉클해졌다.    

 

  언니네 아저씨는 우리가 밥을 먹을 동안 엉거주춤 섰다가 바닥에 앉았다. 같이 앉을 의자가 없던 탓이었다. 고맙게 밥을 먹으면서도 그 때문에 한편으론 미안했다. 잠시 후 아저씨는 우리가 사 간 스파클링 와인 대신 진짜 포도주를 내오더니 한 잔씩 따라 주었다.     


  “서로 연락이 잘 되던 사람이 갑자기 뚝 끊어지고 답이 없더라. 참 맘이 이상했어요.”     


  밥시중을 들던 언니가 담담히 내뱉은 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서운한 언니의 감정이 그대로 실려 왔다. 우리 말고도 언니는 다른 사람을 포루투의 숙소로 초대했었는데, 연락이 잘 되다가 식사 초대 후부터 그에게서 연락이 끊긴 모양이었다.     


  은영 언니 부부와 만나게 된 것은 산티아고 길을 걷던 도중이다. 산티아고 순례 16일 차,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를 향해 길을 걷다가 카페에 들렀을 때, 한국인으로 보이는 부부가 말을 걸어왔다. 그게 언니 부부였다. 그날 저녁 우연히 같은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뒷날 한국인이 하는 알베르게에 같이 묵으면서 언니네 부부와 오랫동안 얘기하게 되었다. 언니는 기독교도로서 믿음이 돈독한 사람이었고 그 믿음이 삶에서 체현되고 있어선지 함께 있어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다만 하나님과 더 잘 소통하길 바랄 뿐, 다른 소원은 없어요.”     

  한국인 알베르게에서 비빔밥을 먹고 난 후 함께 얘기하는 동안 언니에게서 들은 가장 인상적인 말이다.   

   

  해외 건설 현장에서 근무할 만큼 치열하게 인생을 살던 아저씨는, 만 60세가 되자 모든 걸 정리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단다. 언니네는 한국의 아파트를 월세 주고 대신 미국의 작은 아파트를 세내어서 살고 있었다. 그 차액과 국민연금을 가지고 다달이 생활비를 충당하나 보았다. 미국에서 자동차도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언니네의 삶은 참 단출하고 가뿐해 보였다. 

    

  그러면서 언니 부부는 1년이면 두세 달을 해외여행 한다고 했다. 남미에서 집을 구했을 때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싸게 구해서 남미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평소 생활비도 남을 만큼 넉넉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언니네는 항상 외국 여행을 가기 전에 에어비엔비에서 숙소를 구하고 최소 5일 정도를 같은 집에 묵으며, 마트에서 장을 봐서 식사는 집에서 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포르투에서도 우리는 끼니마다 사 먹어서 식비가 많이 들었지만, 언니네는 다양한 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만들어 먹고 밖에서는 점심만 해결하니까, 여행비가 우리보다 적게 들면서도 훨씬 좋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한국의 한 달 생활비면, 외국에 나가서도 한 달을 살 수 있어요. 들어오는 연금이면 충분히 생활하니까 선생님도 그렇게 살아보세요.”     


  여행의 경험을 들려주던 아저씨가 부러워하는 내게 권한 말이었다. 식사한 후 우리는 함께 근처에 있는 바(bar)에 가서 앉았다. 산티아고를 함께 걸었던 얘기며 그동안의 여행 얘기, 삶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흘렀다. 

  미국의 같은 교회에 다니던 교우가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았는데 갑자기 아내가 중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그 남편이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너무 힘들어했다며 언니는 말을 이었다.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서로를 잘 보듬으며 함께 즐거운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한 거 같아. 그런 면에서 여행이 참 좋아.”     


  나는 언니 부부가 참 멋져 보였다. 낯선 미국에 살면서도 1년에 두 달은 또 해외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남의 집을 빌려서, 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해 먹는다. 그러면서 배낭 하나 둘러매고 버스 나 열차를 타고 주변을 돌아다닌다. 어차피 인생은 매 일이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여행이 아니던가? 60이 넘은 나이에 아무런 자극이 없이 무덤덤하게 지내기보다는 그 낯섦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 부부가 얼마나 소탈하고 아름다운가?      

  전자레인지에 쌀을 넣어 두 공기의 밥을 해낸 언니의 사랑이 나는 참 존경스럽다. 낯선 땅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밥을 해 먹이는 그 정성이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울 때, 가끔 언니 생각이 난다. 언니가 식탁 위에 전자레인지 밥을 얹어주던 그 순간이......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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