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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Feb 03. 2023

추억의 간식

나의 밥그릇, 간식 주머닌

바닷가 뒹굴던 노란 황도 통조림통     

갯벌에 물 빠지면

도망 못 간 딱지게 보말 신데기 모아 넣고서

발밑에 뒹굴던 물 말아 넣고, 돌 틈 사이에서 끓인다.     

붉게 변한 몸뚱이, 질척거리는 짭짤한 단맛

신데기는 어째도 쓰거워

골라 먹다, 짜고 쓴 혓바닥엔

괴괴한 바다가 들어있다.     

바다를 삼킨 나는 거인이 되어

두 손 훼훼 저으며 뻘밭을 밟는다.

씨 검댕이 묻은 손, 얼룩진 얼굴

밥그릇 버려두고 물속을 간다.     



딸아, 엄마 어릴 적 간식 얘길 좀 해볼까? 


따뜻한 봄에 들길을 혼자 걸어가면, 발밑의 내 그림자를 쳐다보게 된단다. 그러면 나는 손발을 움직이면서 내 그림자가 얼마나 나를 따라 하는지, 길바닥을 쳐다보는 거야. 그러다가 옆으로 눈길이 가면 돌담 아래 초록 잎 사이로 빨간 알맹이가 보여. 뱀딸기란다. 만지면 오돌도돌한 돌기가 느껴지는데, 매우 연약하지. 먹으면 밋밋한 단맛이 입안으로 흐르는데 먹었다는 기별은 안 가. 


그보다 더 이른 4월 초인가?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애들을 따라서 동네 우물 근처에 있는 너른 밭으로 갔어. 날씨가 쌀쌀했는데 입은 옷도 헐거워서 그날따라 유난히 춥게 느껴졌단다. 그런데 동산 위에 있던 그 밭에는 불을 피우던 흔적이 남아있더라. 흙이 뿌려진 덤불 위로 연기가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어. 그 속에 갖 구워진 새끼 양파가 더러 있었지. 나뭇가지로 흙 덤불을 들추며 손으로 양파를 파내었어. 하나의 양파알맹이를 가지고 두 명이 나눠 먹었단다. 내 입으로 양파가 들어왔을 때, 겉이 물컹하면서도 달큼한 양파 향이 아주 좋았어.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흙 덤불을 파낼 때 따뜻하던 흙의 감촉이 손에 맴도는 듯하다. 그때만큼 양파가 맛있던 적은 없었어.


뱀딸기보다 탐스런 녀석들은 담벼락을 타고 넘나드는 가시덤불에서 볼 수 있지. 멍석딸기인데 하얀 꽃이 지고 나면, 뽀글뽀글하고 단단하게 붙어있던 알맹이들이 붉게 불어나면서 익어간단다. 자잘한 알맹이들이 모여서 한 덩어리를 이루기에 눈에 잘 띄지. 빨갛게 익은 열매들을 줄줄이 훑다가 가시에 팔이 긁히는 것도 부지기수였어. 한 웅큼 따서 한꺼번에 입으로 털어 넣을 때는 뿌듯하기까지 하단다. 너도 본 적이 있을 거야. 요즘도 가을 들에서 볼 수 있으니까.


간식 중 최고봉은 삼동이야. 제주도의 블루베리라 할 수 있는데 5월 초 보리가 익어갈 때쯤인가, 초록빛 삼동나무에서 까맣게 익어가는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지. 삼동나무는 야산이나 들판을 경계 지은 담벼락에 붙어 자라는 키 작은 관목이란다. 입안에서 톡톡 터뜨리며 먹는데, 블루베리보다 작지만, 훨씬 새콤달콤하고 맛있어. 그래서 삼동이 많이 열리는 때가 되면, 우리는 양은 주전자를 들고 따러 가곤 했어. 그래봤자 주전자의 바닥을 넘어서긴 어려웠지만, 목표는 원대했었지. 


대여섯 명이 함께 야트막한 산이 있는 들판으로 걸어갔었다. 햇볕이 등 뒤로 따사롭게 내리쬐던 날이었어. 야산이라 순 돌밭이었는데 가시덤불 근처에 삼동이 많이 열린 나무를 발견했어. 얼마나 많은지 초록색 잎 사이로 까만 열매들이 빼곡히 얼굴을 내밀고 있더구나. 다들 신나서 달려갔지. 막 따려고 손을 내밀려는데 뭔가 이상해. 보니까 돌담 위에 초록빛 띠를 두른 굵은 뱀이 앉아 있는 거야. 모두 질겁해서 뒤로 물러섰지. 잠시 후 그 뱀은 스르르 돌 아래 수풀 사이로 미끄러지듯 내려갔지만 아무도 가까이 갈 수가 없었어.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놀면서도 먹을 수 있는 게 많아. 썰물이 되어 갯벌이 드러나면 수많은 구멍들이 보인다. 작은 게들이 바글바글 움직여 다니지. 통조림 빈 깡통을 주워다가 운 좋게 잡은 게나 갯바위에 붙어있는 보말을 깡통에 담아서 바위 한 귀퉁이 바람 없는 곳으로 가는 거야. 그곳에는 검불이랑 나무 작대기들이 있어. 그것으로 불을 피워 끓이는 거지. 바닷물을 말아 넣고 말야. 번번이 그걸 간식으로 먹었어.


산이나 들에서 간식거리를 찾았던 봄여름과 달리, 가을엔 고구마가 나와. 고구마 알맹이가 굵어지기 시작하면, 밭으로 고구마를 캐러 가는 거야. 밭두둑에 앉아 고구마 이파리 들추고, 줄기를 따라가면서 굵은 부분을 고르는 거지. 그리고 골갱이(호미)를 가지고 양쪽으로 흙을 살살 파낸 후 알맹이를 손으로 따는 거란다. 고구마는 썩기 쉬우니까 조심히 다뤄야 해. 밭에 앉아서 흔들리는 이파리들을 보며 바람을 느끼거나 흙을 밟는 촉감은 또 다른 즐거움이야. 


겨울에는 빼떼기야. 고구마 썰어 말린 것(빼떼기)을 쪄 먹는 건데, 팔 거라서 양껏 먹어보진 못했단다. 춥고 배고픈 계절이지. 어쩌다 씨고구마라도 캐다 먹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은 되게 운수 좋은 날이지.


내가 어릴 때는 간식거리가 없어서, 늘 배고팠고 산천으로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녔어. 그러다 뭐든 얻어먹게 되면 아주 맛있고 행복했지. 늘 모자랐기에 그 맛이 진하게 느껴진 것 같아. 그러니까 맛의 필요조건은 결핍인 것 같다. 맛있게 느껴졌을 때 행복을 느꼈으니 행복은 결핍에서 출발하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딸아 뭔가 결핍되었다고 느꼈을 때, 너무 조바심내지 마. 행복을 느낄 순간은 바로 그다음에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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