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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an 20. 202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나왔다. 

“저런 미친 새끼가 다 있나!”     


  나는 숙이와 통화 중에 전화에다 대고 버럭한 것이다. 숙이가 제자라는 생각조차 잊어버릴 만큼 흥분했나 보다. 숙이의 고교 동기생인 황진이가 학교 다닐 때 그런 일을 당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해자는 혼자였을까? 동조자는 없었을까? 우리는 왜 그땐 몰랐을까? 만약 그때 우리가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뭘 어쩔 수나 있었을까? 그 모든 복잡한 감정에서 터져 나온 말이 그것이었다. 

  미친 새끼!     


  황진은 예뻤다. 이름처럼 눈도 크고 콧날도 오똑하고 몸매도 여리하고 게다가 머리도 좋았다. 그런데 매사 냉소적이었다고나 할까?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도 없고 1980년대 여고생이라면 보일 만한 청순함이 없었다. 어쩌다 대답을 잘했을 때, 잘한다고 칭찬을 해줘도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얼굴을 스치다 그만일 따름인 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 보면 겨우 허리나 세우고 있을 뿐 도무지 수업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기본 머리는 있어서 시험은 곧잘 봤다. 게다가 어머니가 술집을 해서 행실이 좋지 못하다는 둥, 학교에서 담배를 핀다는 둥 들리는 뒷말이 많았다. 남자애들과 어울려 여름방학 때 다리 밑에서 소주병 나발을 불었다는 얘기가 들렸을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었다.      


  ‘에고 어미 잘못 만나서 저런가? 안타깝지만 닮아가는 건가?’     


  그랬는데...... 

  내가 걘 고교 때부터 살 뺀다고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고 그랬다며? 라고 말하자마자      

  “담임 때문에 그랬어요.”      


  숙이가 그러는 거다. 어리둥절한 나를 두고 숙이는 담임이 수업시간에 들어오면 가끔 키가 큰 숙이더러 앞에 빈자리에 가 앉으라고 하고서 숙이 자리에 들어앉아 황진을 불러놓고 자기 무릎에 앉혔단다.

 <무릎에>. 


  그러고 나면 쉬는 시간에 황진은 화장실로 달려가 담배를 물었다고 한다. 

  어느 날은 담임이 숙이 옆을 지나다가 손을 어깨에 얹더니 가슴까지 내려오더랜다. 그래서 째려봤더니 얼굴을 툭 치고 지나갔고 그다음부터 자기를 건들지는 않더라나. 그래서 내가 말해줬다.


  “잘했다. 그렇게 째려보기라도 해야지!”     

  암튼 황진의 얘길 들으니 부들부들 떨린다. 


  ‘아, 내가 너를 지켜주진 못할망정, 방관만 하면서 네 엄마 탓이나 했으니 이를 어찌할  꼬!!! 미안하다 황진아. 그러니 네가 다른 선생들도 선생으로 보였겠니? 다 그렇고 그런 연놈들로 보였겠지. 정말 미안하다 황진아, 몰랐었어. 정말 몰랐었어.’   

   

  암튼 황진에게 그 짓을 한 그 이름은 승기다. 그가 한 행동은 1980년대 일이었다.    

 

  1970년대에는 성추행이라는 말이 없었다. 성폭행은 강간이란 말로 불렸다. 그러나 강간으로 처벌받는 사람은 드물었다. 강간을 당했어도 순결을 빼앗긴 여자라는 말로 대치되어서 마치 무슨 폐기물이 된 것처럼 뒷말이 퍼져나갔다. 그 때문에 알려지기 두려웠기에, 말을 할 수 없어서 처벌받는 자가 드물었을 거다.     


  중학교 2학년 때 전체 조회에서 교장 선생님이 훈화까지 할 정도로 학교에서 난리가 났다. 바닷가 근처에 미군들이 임시 진지를 쳤는데 그쪽으로 가지 말라는 거였다. 알고 보니 3학년 여학생 몇 명이 바닷가로 놀러 갔다가 미군들이 있는 막사에서 시시덕대는 걸 동네 사람이 알고서 데리고 나온 거였다. 미군 막사에 여학생이 함께 들어간 일 자체가 엄청난 사건이었던 거다. 그때 교장 선생님은 순결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에게 심어줬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은 학교 선생에 의해서 벌어졌다. 어떤 일은 공공연히 행해졌고 어떤 일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는데 그 비밀이 공공연한 경우가 되어도 대체로 쉬쉬하며 그냥 넘어가던 시절이었다.


  중 2학년 소풍 때다. 동네에서 2km 떨어진 수월봉으로 소풍 갔다. 소풍 중간에 반별로 노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담임은 결혼한 가정 선생이었고 부담임은 한쪽 다리를 저는 영어 선생이었다. 그런데 수건돌리기 놀이를 하다가 영어 선생님이 술래가 되었다. 그런데 이 선생이 일어서더니 우리 가운데로 들어왔다. 어쩌다 우리도 엉거주춤 다 일어섰는데 갑자기 왁~ 소리를 지르며 수건을 가진 손으로 여학생들이 가슴을 잡을 듯이 한 바퀴 돌리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소리를 지르며 흩어졌다. 한동안 아이들 입에서 ‘톨락발이 선생이 가슴 만지려 했다.’는 소리가 공공연히 다른 반까지 퍼져나갔다. 게다가 그날 그 선생은 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부녀의 어깨를 만지려고 추근대는 것을, 그리고 여선생은 티 나지 않게 그 손길을 피하려고 애쓰던 것을 우리는 지켜봐야 했다. 그래도 ‘톨락발이’ 선생은 탈 없이 학교만 잘 다녔다.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내 귀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건이 되었다는 뜻이다. 당시는 자가용이 희귀한 시절이라 학교에서 집이 먼 교사들은 보통 학교 근처에서 자취했다. 그런데 자취하는 기술 선생 집으로 밤마다 3학년 여학생이 찾아간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 선생은 불순한 짓을 잘한다는 얘기도 돌았다. 과목이 기술이라 내가 수업을 받지는 않았지만 느끼하게 보이는 40대 정도의 곱슬머리 남자 선생이었다. 그러나 그런 소문을 듣고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어서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다 시에 사는 언니네 집으로 가려고 버스를 탄 오후였다. 나는 버스 중간쯤에 있는 비어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그 말 많던 기술 선생이 버스 가운데로 들어왔다. 그래도 선생이니까 일어서서 인사를 하였다. 그 선생님도 아는 교복이라고 반갑게 인사를 받더니 내 옆에 앉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교복을 단정히 입고 외출을 하는 것이, 기본이던 때였다. 그리고 가르치지 않아도 학생이라면 같은 학교 교사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히 지켜야 할 예절이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10분쯤 갔을까, 갑자기 정말 느닷없이 이 선생의 두툼한 손 덜미가 내 허벅지로 들어왔다. 나는 너무나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기가 막혀 입만 떡 벌리면서 말이다. 그러자 이 자는 내 뒷자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가 얼마나 혐오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말 못 했다.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모르게 터득해왔기에 그랬던 걸까? 그냥 아무에게도 말하거나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일어서는 바람에 다행히 그 손길은 거기에서 그쳤는지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당시 기술 선생의 집에 밤마다 갔다던 순덕 언니는 정말로 자신이 원해서 그 짓을 벌였을까? 어쩌면 당한 것이 반복되면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았을까? 1970년대 중 2학년인 내게 그 짓을 했던 그 새끼 이름은 길중이다.  

   

 기술 선생이었던 그 인간은 지금 죽고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인간은 교장으로 퇴직하고 아주 잘 살아있다. 그런 그에게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다.     

 

  그때 황진의 사정을 알았더라면 적어도 나는 내 얘길 꺼내면서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으로 위로해주고 맞서 싸우라고 해줬을 거다. 그리고 더 어렸을 때의 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던 어린 나에게 기특하다!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던 황진이에게 그리고 어린 나에게 늦게나마 바치는 이 위로가 헛헛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가해자는 정말 혼자였을까? 동조자는 없었을까? 동조자가 없다면 어떻게 그렇게 오래 되풀이될 수 있었을까? 왜 우린 몰랐을까? 

  지금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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