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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an 09. 2023

상은이의 꿈

  학기 초 아이들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때는 상담이 최고였다. 아이들과 일대일로 마주 앉으면 비로소 한 아이가 온전히 눈에 보이고 가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학기 초 3월에는 아무리 많은 일이 쌓여있더라도 상담을 꼭 했다.


  상은이와 상담을 하려고 마주 앉았다. 상은이는 키가 작고 얼굴이 동그라며 볼이 빨간 게 고1이라기보다 중1 같았다. 게다가 쌍꺼풀진 눈매가 무척 슬퍼 보였다. 상담 자료에 적힌 상은이의 희망은 수학교수였다.   

  

  “상은이는 수학을 좋아하는구나. 수학 잘하니?”

  “네 저는 계산하기 좋아해요. 아주 빨리 해요.”     


  말문을 트고자 묻는 내 말에 상은이가 한 대답이었다. 이것저것 얘기하다 가정 사정을 알아볼 차례였다.   

  

  “아빠는 뭐하셔?”

  “집 짓는데 일 다니고 계세요.”
   “그래? 우리 아버지도 일본에서 노동일 하셨단다.”     


  그 말을 해서일까? 상은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어서 상은이는 현재 아빠와 둘이 살고 있으며 아빠가 알콜 중독이라는 얘기까지 해주었다. 마음이 짠해졌다. 나는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담임에게 얘기할 것과 수학 성적이 기대된다며 다독여주었다.      


  3월이라 우윳값이며 저축이며 학생들에게서 걷을 돈이 많았다. 나는 상은이에게 학급 총무를 맡겼다. 계산하기 좋아하는 상은이의 특기를 활용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단체로 우유를 주문해서 우유 급식을 했다.      


  “선생님 우윳값 걷어왔어요.”     


  상은이에게 일을 맡기면 53명의 한 달 치 우윳값을 신속 정확하게 걷어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상은이의 빠른 일솜씨를 칭찬해주었다. 우윳값 걷는 일보다 힘든 것은 저축할 돈을 걷는 일이었다. 반 학생들의 저축 금액은 매번 달랐고 그 인원도 달랐다. 상은이는 학급 명렬표에 저축 금액을 표시한 다음, 빠르게 합산해서 돈과 통장과 저축 액수를 맞추고 의기양양해서 달려왔다. 그런 상은이에게 역시 장차 수학 교수가 될 사람답다고 엄지를 쳐들며 칭찬해주곤 하였다. 학급비를 걷거나 돈과 관련된 어떤 일에 있어서도 상은이는 실수가 없었다.      


  그러던 그해 가을쯤 되면서 임신으로 힘들어하던 내게 심한 두통이 왔고 그게 너무 잦아졌다. 조퇴를 하고 병원엘 갔다. 의사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편안하게 쉬던지, 아니면 낙태를 해야 한다고 겁을 주었다. 그 당시에 우리 반 학생들은 전교에서 제일 주목받는 말썽쟁이가 모여있는 반으로 소문이 난 터라 나는 매일 마음을 졸이며 아이들을 다독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담임을 맡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막상 반 학생들이냐 배 속의 아이냐를 두고 갈등하게 되자, 나는 쉽사리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교장실을 찾아가 상황을 말씀드리고, ‘담임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말했다. 학교 측에서는 별말 없이 다른 여선생으로 담임을 교체해주었다.     

  담임을 그만두자 신경 쓸 일이 적어져서인지 다행하게도 두통은 가라앉았다. 그러나 비담임이 되면서 내가 맡아서 수업하는 학년이 달라졌다. 담임을 맡던 교실엔 들어갈 일도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1학년 교실을 지나가야 할 때면 나는 내 아이들이었던 학생들이 그리워 창문 너머를 흘깃거렸다. 


  교실을 꽉 채우고 있는 반 아이들을 볼 때면 내 얼굴엔 저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조용히 수업에 집중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눈동자가 창밖을 향하거나 책상 밑으로 고개를 숙인 친구들도 보였다. 말썽쟁이 녀석들은 여전히 움찔거리며 장난쳤지만, 그래도 교실에 앉아있는 게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이 부디 별 탈 없이 지내고 제 꿈대로 잘 자라기를 바랐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을 즈음, 새로 맡은 담임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 상은이가 경찰서에 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왜 그런지 물었다.     


  “상은이가 동네에서 물건을 훔쳤어요. 그것도 한번이 아닌가 봐요. 단단히 화가 난 가게 주인이 상은이를 잡고서 경찰에 넘겼대요”


  가슴이 아려왔다. 아이가, 아직 다 크지도 못한 아이가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도둑질을 했는지……. 그날 수업을 끝내고 경찰서를 찾았다. 근무하는 경찰관에게 상은의 학교 선생이라며 아이를 면회 왔다고 했다. 내 신분증을 보자 경찰관은 순순히 나를 상은에게 인도했다. 나는 경찰관을 따라 유치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다른 남자들도 있었다. 성인들이었다. 사나워 보여 약간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상은아”     

  내가 부르자 상은이가 얼굴을 들었다. 여전히 애처로운 눈망울, 앳된 뺨을 가진 아이였다.      

  “상은아, 왜 여기에 와있어? 무슨 일이야?”

  “선생님, 죄송해요.”     


  그뿐이었다. 상은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순한 눈망울을 떨어뜨렸을 뿐,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담임을 그만둔 후 상은이를 처음 봤다. 새로 담임을 맡은 선생에게 간섭이라고 여겨질까 봐, 아이들의 소식을 쉽사리 묻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엄마도 없이 아빠와 단둘이서 살아온 상은이, 돈이 그렇게 궁했을까? 뭣 때문에 그랬을까? 학급비는 손도 안 댔었는데. 내가 담임을 맡고 있었다면, 나에게는 사정을 말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내가 담임을 맡으면서 상은이를 살뜰히 돌봤더라면 아이는 학교에 잘 다녔을 수 있지 않았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으로 휙휙 지나갔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저 철창 밖에 서서 철창을 잡고 상은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상은이를 격려해줄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쇠창살만 차갑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경찰서 밖으로 나왔을 때야 상은이에게 뭔가 먹을 거라도 사 들고 갔어야 했나? 생각하며 후회를 했다. 면회해본 경험이라곤 없는 걸 한탄해야 할지, 다행이라 해야 할지 기분이 묘한 채로, 다시 들어갈까? 갈등했지만 그냥 돌아섰다. 스산한 저녁, 가을바람만 내 다리 밑을 훑고 지나갔다.      


  그 후로 상은이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나 대로 애 키우고 바쁘게 살았다. 오 랫 동 안......


  나는 가끔 상은이의 꿈이 생각난다. 수학 교수가 되고 싶다던 꿈이. 피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연약한 그의 꿈. 이루어질 수 없었던 그의 꿈이 가끔 내 가슴을 후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건 나도 안다. 어른이 되면서 어릴 적 지녔던 꿈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 있으랴? 그러나 상은이는 피어오르다가 툭 부러지고 만 목련꽃처럼, 어느 찰나의 바람에 땅에 떨어져 버린 꽃봉오리처럼 그렇게 삶이 꺽여버렸다. 그런 아이의 삶이 말을 거는 것 같아 가끔은 가슴이 아프다.     


  아이는 교도소로 옮겨졌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더이상 아이를 찾아가지 못했다. 


  교사니까 무조건 끝까지 학생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엄마에게 버려지고 아빠는 안전한 울타리가 못 되었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꿈을 믿어주고 격려해주던 유일한 어른이 혹시 나였지 않았을까? 담임을 관두었다고 쉽사리 내가 끈을 놓아버렸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잘 붙들었더라면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수학 교수는 되지 못했을지라도 고교를 졸업하고 삶의 현장에서 제대로 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가 밀려들 때면 나는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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