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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Dec 23. 2022

길고 긴 생일축하

  엄마, 피부 마사지 어때?

  그찮아도 산티아고 갔다 오면서 피부 마사지를 받고 싶었는데, 왜?

  잘됐다~     


  큰 딸아이가 회갑 선물이라며 10회 마사지권을 끊어주었다. 그렇게 내 생일이 되기 3주 전부터, 덕분에 나는 피부 마사지샵에 가서 얼굴을 들이밀고 마사지를 받았다. 몇 년 만인가? 

  7년 전이구나. 그때는 2만원이었는데 지금은 5만원이다. 어느 날 큰 애를 데리고 마사지 받으러 가서 나란히 누웠는데, 마사지샵 원장은 모녀지간이 함께 마사지를 받는다고 부러워했었다. 딸아이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 함께 간 거였는데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그런데, 내가 돈을 내지 않아서 그런 건지, 샵의 원장은 적당히 얼굴만 마사지하고 목은 대충 끝내버렸다. 어, 이게 아닌데, 얼굴마사지를 받으면 목과 등줄기까지 세심한 손길로 쓰다듬어줘서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게 좋아서 마사지를 원한 건데! 잔뜩 기대하고 갔던 터라 나는 서운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마침 큰딸의 영상 전화가 왔다. 엄마, 마사지는 어땠어? 차마 불만족스럽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내 얼굴을 봐. 촉촉한 게 느껴지지 않니? 

  2번째 마사지를 받던 날엔 다른 손님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끝마무리가 제대로 된 것 같지 않다. 딸아이의 생일 선물인데 기분이 매우 찜찜했다. 급기야 3번째 가는 날, 나는 마사지샵 원장에게 나의 불만을 털어놓아서 조금이나마 등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생일날 저녁, 남편과 나는 큰아이가 마련한 값비싼 음식점으로 갔다. 눈은 살짝 내리고 평소에 안 입던 코트까지 맞춰 입고서 식당에 도착하니, 이곳저곳에서 아이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가 울려 퍼진다. 어머나 요즘은 가족의 생일파티를 이런 곳에서 하는구나.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미역국과 돼지갈비가 전부였는데! 내가 말하며 앉는 동안에 남편은 말없이 코트를 걸어줬다.    

 

  엄마, 해마다 천원씩, 엄마 생일을 기념해서 내가 저금했다고 생각해줘! 작은딸이 왕관 모양의 케잌 상자를 내려놓으며 한마디 한다. 케잌을 찾느라, 눈 내리는 밤에 00호텔까지 왕복 3시간이나 애를 썼건만, 내 입에서 나온 얘기는 고마워! 그 한마디였다. 게다가 내 생애에 가장 비싼 케잌은 딸 아이가 알바로 마련한 것이었는데! 아차, 감탄사를 연발하며 안아줬어야 하는데 늦었다! 왜 감동을 표현하는 것이 이리 서투를까? 나이가 들면 짠맛의 역치가 높아져서 엔간한 것은 짜게 느껴지지 않는다더니 감동의 역치가 높아져서 그러는 걸까? 에휴~ 속으로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회는 싱싱했고 북어 식혜와 샐러드도 맛있었다. 곁들여서 먹으라는 오이채 톳무침이 독특해 보였다. 톳이라......

  이른 아침 겨울 바다에 가서 톳을 캤었지. 중2 때니까 46년 전 일이다. 어느덧 회갑이라니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찬 소금물에 손이 닿으면, 찢어질 듯 아프다가 얼얼하다가 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바위에 돋아난 톳을 낫으로 베어 비료 푸대에 담았었지. 어머니 대신, 마을 공동 노동에 나간 건데,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논바닥 갈라지듯이 갈라지며 손등에서 피가 났다. 그 바람에 손을 드러내기가 부끄러워 점심 도시락을 혼자 까먹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 세상 낳고 존함이라는 말도 들어봤어. 작은딸이 고교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비싼 호텔에 방을 잡던 날 얘기를 재잘거릴 때도 묵묵히 밥만 먹는 남편을 바라보며 나는 딸에게 겨우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나도 뭔가 재미있게 말을 해야 하는데 할 말이 없다. 종업원이 친절하게 꽃등심은 굽고 자르는 동안에도 입안에 살살 녹아드는 고기 맛을 느끼면서도 맛있네! 고마워요! 할 뿐이다. 이제 작은 애마저도 없으면 밖에서 생일잔치를 하긴 어렵겠구나. 좋은 음식에 곁들일 양념 같은 대화가 남편과 나 사이에 점점 사라지는 걸 보면 늙어간다는 것은 말도 없어지는 것인가? 원래 우린 말이 없었나? 아닌데, 예전엔 시사나 정치 얘기도 많이 했는데...... 앞으로 어떡하지? 할 말은 없어도 드는 생각은 많았다.  

   

  생일 뒷날, 오랜만에 자가용을 타고 남편과 같이 덕산에 있는 개인 온천으로 갔다. 2박 3일 풀빌라? 나에겐 생소한 이름인데 역시 큰딸의 선물이었다. 숙소는 다섯 동이 있었는데 이미 집마다 자동차가 차 있고 출입구엔 등불이 안온한 빛을 내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뜻한 온기가 나를 반긴다. 방과 거실이 있고 거실 안에 세면대와 화장실이 깔끔하게 갖추어져 있다. 거실에 앉으니 앞마당에 온천탕이 보인다. 담벼락이 높아서 홀딱 벗고 탕 안으로 들어가는데 문제없겠다. 


  남편이 먼저 샤워부스에서 몸을 씻고 탕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씻는 동안 남편이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온천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연 순간 찬 공기가 훅하고 몸으로 끼쳐온다. 아이구, 추워라. 얼른 물속으로 들어갔다. 낮에 등산하다 미끄러져 허리가 삐끗한 것 같았는데 가만 앉아있으니 다 풀린다. 30분을 넘어서니 온몸의 열기로 가득 차서 앉아있을 수가 없다. 탕 안의 계단에 앉았다, 몸을 깊이 담갔다 하며 하늘을 봤다. 흐린 밤, 인공위성만 반짝이고 있었다. 먼 하늘에 비행기도 반짝거리며 지나간다. 눈이 내리다 온천 가까이 오면 물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간간이 옆집과 우리 집에서 올라가는 수증기가 때 지어 올랐다가 흩어졌다. 남편이 내 몸을 만지며 자꾸 장난을 쳤다. 아무 생각 없이 발가벗고 수영하던 어릴 때처럼, 오랜만에 낄낄거렸다.      

  우리가 목욕하는 도중에 큰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어때? 아주 좋아. 이 추운, 눈 오는 밤에 밖에서 목욕이라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네. 엄마, 온천을 보여줄 순 없어? 나도 안 가봐서 되게 궁금해. 에구 어떡하니. 여기 밖엔 전등이 없어서 거실 불로는 화면이 꺼멓게밖에 안 보이네. 

  결국, 영상 통화로는 온천탕을 보여줄 수 없어서 아쉬운 대로 사진을 찍어 보냈다. 

     

  [나 어렸을 적엔 겨울내내 목욕이란 걸 못했다. 그때는 양력설이라는 게 있어서 1월 1일 전날쯤 공중목욕탕엘 갔었지. 어머니랑 언니들이랑 남동생까지 버스를 타고 목욕탕엘 가서, 천장이 온통 뿌연 안개가 뒤덮힌 곳에서 온몸이 빨갛도록 때 밀고 나면 어찌나 개운했던지, 한 꺼풀을 다 벗어버린 느낌이었지. 끝나고 팥죽까지 사 먹었던가? 아주 행복한 날이었다. 오늘도 그렇게 행복하네......글구 네가 돈을 많이 쓰게 해서 미안스럽다야.]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인 걸^^]

  [내가 돈 더 많이 벌면 더 호강시켜주는데..]

  [저런 어쩜 조아]

  [나도 살기 바빠서 그만큼만 하는 거얌]

  [이것도 넘친다 얘]

  [암튼, 걍 즐겨]


  그래도 큰 애에겐 문자로 보내는 것이라 충분히 행복하다고 얘기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여보, 등 좀 밀어줘. 산티아고 갔다 왔던 후로 한 번도 목욕탕을 안 가선지, 때가 나오네. 

  그래, 우리 목욕탕 가본 지 오래네. 한번 가야되는데......

  우리는 샤워부스에 쪼그려 서서 손바닥으로 서로의 등을 열심히 밀어주었다. 당신이 있어서 이렇게 등을 밀 수 있구나. 고마워요. 다행하게도 나직이 한마디 보탤 수 있었다.    

 

  길고 긴 생일축하는 앞으로도 7주간이나 더 남아 있다. 마사지 갈 때마다 딸아이의 정성을 생각하며 감동하자. 감동도 되새김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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