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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y 05. 2023

성체 심신 효소  단식 피정

  성체 심신 효소 단식 피정을 다녀왔다. 3박 4일의 일정이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무 높아져서 올해부터 고지혈증약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의사 선생님의 경고에 ‘건강 검진 전에 무슨 수를 써야 한다’고 다짐했던 것이 단식 피정을 참가하게 된 계기였다. 그랬기에 갈 때는 ‘살 빼고 건강이 좋아져야지’라는 기대밖엔 없었다.     


  첫째 날도미니코 수도원에서의 만남


  성체 심신 효소 단식 피정은 수유동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원서 진행되었다. 그곳에는 나를 포함해 20명이 참가자가 모여들었다. 한방에 한, 두 사람이 기거할 수 있었고 강의실에서는 강의와 식사가 진행되었다. 강의는 성체 신심과 관련해서 신부님이 하시거나 단식과 관련한 것은 지도 원장님 부부가 진행하였다. 첫 식사는 저녁 6시에 한약재로 된 20ml 정도 되는 물(미래를 알리는 소리)을 10분에 걸쳐 천천히 마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에 곡물과 해조류로 만든 과립을 한 스푼 씩 떠서 섞은 다음 꼭꼭 씹어 죽으로 만들어 삼킨다. 야채 발효 효소를 탄 물 600ml를 조금씩 마셨다. 식사 시간 20분이 그렇게 지나갔다. 무얼 먹어선지, 아니면 공동으로 앉아서 함께 한 때문인지 작은 접시에 과립 2스푼만 먹었는데도 오래도록 전혀 배고프지가 않았다.


  식사 후 각자의 인사가 진행되었다. 의외로 참가자는 60세 되는 내 또래가 가장 많았고 75세가 되신 분도 있었으며 젊은이도 더러 눈에 뜨였다. 참가하는 이유도 다양했는데 젊은이들은 살을 빼기 위해 왔다. 한 사람은 작년에도 참가했는데 살이 잘 빠졌다며 올해는 결혼식도 있고 해서 왔다고 한다. 나처럼 고지혈증이나 당뇨, 고혈압약을 끊거나 피부 질환을 치료하려는, 건강을 위해 단식을 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우리 중 한 사람은 유방암 환자였는데, 항암 치료 중에는 단식할 수 없어서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무산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항암 치료를 끝내고 무척 애를 써서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단식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둘째 날두통이 사라지고 성체 조배를!


 아침 7시, 마당에 모여 동네 솔밭공원으로 갔다. 우리는 한 시간 동안 공원을 돌았다. 그리고 전날처럼 아침을 먹고 강의를 들었다. 그 전날 저녁 관장을 했는데도 변을 잘 못 봐서 그런지 몸이 찌뿌드하고 졸렸다. 원장님이 효소 강의를 하는데 집중이 안 되어서 숙소로 올라가서 낮잠을 잤다. 간식은 하루에 3번 있었다. 생수 600ml에 야채 효소를 2스푼 넣어 마셨다. 저녁때까지도 배고픔은 없으나 약간의 두통이 있었다. 그런데 변을 잘 보려고 저녁과 아침에 마그밀 4알씩 먹은 게 효과가 있어, 온종일 배가 부글거리더니 설사를 했다. 설사 후, 독소가 빠져나간 탓인지, 두통이 사라지고 몸이 편안해졌다. 저녁에는 미사를 봤다. 미사 후 성체 조배 시간이 있었는데 한참 성체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속으로 말이 흘러나왔다. 

  ‘예수님, 제 의지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마주하고 보니 당신이 부르신 것 같네요. 매일 게으른 저를 바꿔 달라고 했는데 그에 대한 응답을 주시는 건가요?’      



  셋째 날북한산 둘레길 걸으며


아침 6시 반에 수도원 마당에 모여 북한산 둘레길 쪽으로 걸으러 갔다. 어쩌다 보니 둘씩 줄을 지어 산을 올랐다. 나는 유방암 자매와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4.19 민주묘지가 보인다.      

  “이곳에 서니 아버지가 지어주던 밥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설익은 냄새가 특이했던 밥인데......” 


  유방암 자매가 감회에 젖었다. 4.19 민주묘지 일대를 정비하던 50여 년 전, 그녀의 아버지는 빚쟁이를 피해 움막을 짓고 살았다 한다. 그때 그녀가 언니랑 같이 아버지 보러오면 없는 반찬이지만 아버지가 밥을 해서 딸들에게 먹였다. 석유 곤로에 앉혀 밥을 끓이느라 설익었던 것이다. 그때가 그녀의 아버지의 생애에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6, 70년대엔 누구 집인들 힘들지 않았으랴? 보리밥에 김치, 장아찌 말고 다른 반찬이 있는 집이 얼마나 되었을까? 그녀의 얘기가 내 얘기인 것처럼 느껴지고 갑자기 그녀가 더 가깝게 생각되었다.

  그날 저녁에 고해성사를 봤다. 성당에서보다 오랜 시간 고해를 했다. 고해가 끝나고 나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낡고 더러운 걸레 같은 것을 걷어내는 기분이었다. 아직 예비신자였던 분은 그냥 대화를 나누고 나왔다 했다. 미사 때 양 영성체(성체와 성혈을 먹음)를 하였다. 감미롭게 목 안으로 흘러내려 가는데 마음도 몸도 정갈하고 편안해진다. 


  미사 후 신부님 성체 현시 대에 성체를 올려놓고 돌아가며 한 사람씩 성체를 안는 특별 예식이 치러졌다. 유방암 자매가 처음으로 나아갔다. 절을 올리고 장궤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안았다. 갑자기 그녀의 울음이 터지더니 한참 동안 그칠 줄 몰랐다. 그 후에도 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차례가 왔다. 예수님을 안았는데 신부님이 안수를 주신다. 그저 마음이 평화로울 뿐 나는 아무런 울음도 나지 않았다. 예식을 끝내고 강당으로 돌아와 단식 후 일정에 대한 소회를 나누게 되었다.     


  “성체를 안았을 때, 갑자기 커다랗게 심장이 울리는 소리가 느껴졌어요. 제 심장 소리가 아니었어요. 너무 놀랍고도 감격스러워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구요. 그리고 제 코에서부터 가슴으로 어떤 기운이 내려갔어요...... 아마도 제 병이 나을 것 같아요.”     

  유방암 자매의 소감이었다. 나에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절박했던 그녀에게는 예수님이 응답을 주신 모양이다. 란치아노 성체의 기적에서 알 수 있듯이 미사성제 중에 밀떡이 예수님의 살이 되신 흔적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으니까, 성체에서 심장 박동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겠지. 나는 변화를 체험한 그녀가 부러웠다.      


 넷째 날단식 피정 후...... 안녕?


  3박 4일간의 단식 피정이 끝났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왠지 맑아진 듯하다. 효소를 먹어가며 단식한 덕인지, 배고파 헤매거나 이상 징후를 보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기운은 없지만 나도 견딜만했다. 헤어지며 나는 유방암 자매와 끌어안고 이별 인사를 나눴다.     

  “기도 중에 기억할게요.”
   “감사합니다. 기도 보다 더한 선물은 없죠.”


  집에 와서까지 해서 단식 5일을 채웠다. 몸무게는 2.5kg 빠졌다. 지금은 보식 기간이라 야채와 과일을 섞어서 먹을 수 있으니, 간식만으로도 행복하다. 입맛이 예민해졌고 음식을 꼭꼭 씹으니 매우 달다. 기운이 좀 더 생겼다. 기쁘게 걸을 수 있다. 좀 더 일찍 잠자리에 들고 예전보다 아침에도 빨리 일어난다. 몸도 마음도 가뿐하고 바지런을 떠는 내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걸으러 나가니 햇살이 밝게 빛나고 초록 잎들이 싱싱하게 몸을 떨며 인사한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알알이 기쁨이 튀는 아침, 나도 따라 인사한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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