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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y 19. 2023

햇살방

(호스피스 봉사2)

  “701호 햇살방에 로사씨가 있어요. 이분은 천주교 시니까, 기도 좀 해주세요. 그리고 그 실을 나올 때는 손 소독을 철저히 해주세요”     


  복지사 선생이 눈을 빛내며 차분하게 말을 한다. 혹시나 임종자에게서 다른 환자로 옮길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느라 소독을 강조하나 보다. N 병원의 목요일 봉사팀은 나를 포함하여 3명, 코로나로 3년 만에 봉사를 재개하다 보니 봉사자가 확 줄었다. 환자는 8개 실에 25명이다. 그중 마사지 대상자는 12명인데, 봉사 인원이 적어서 발 마사지만 하기로 했다.      


  “그럼, 701호 로사씨 방에는 맨 마지막에 가서 기도해줍시다.”    

 

  봉사자 중 연장자인 K 언니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맨 마지막을 햇살방으로 정했다. 이름이 참 예쁜, 햇살방은 임종실이다. 호흡이 가빠지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극에 달하는 동안에 머무는 방이다. 햇살방에서 머물고 난 다음의 삶이란 없다. 삶의 끝에 죽음이 오고 저세상으로 떠나는 방이다.    

  

  복지사 선생의 지시에 따라, 어느 호실에 누구는 욕창이 있으니 마사지할 때 주의할 것과 어느 분은 의식이 없으니 마사지하지 말 것, 누구는 피부 상처를 보며 살살 할 것 등 우리가 봉사활동 하는데 필요한 사항들을 마저 메모하고 봉사 준비를 마쳤다.    

 

  남성 환자들이 있는 해바라기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에는 40세인 우형씨가 폐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방이다. 방으로 들어서니 그의 어머니가 먼저 고개를 든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발 마사지해 드릴까요?”

  “지난주보다 좀 좋아진 것 같아요. 발에 있던 상처가 없어지고 있어”

  K 언니의 말에 어머니가 엷게 웃으며 반긴다.      


  두 언니가 환자의 발밑에 수건을 깔고 나는 뜨거운 물에 수건을 짜서 M 언니에게 먼저 건넸다. M 언니는 미소지으며 받더니 뜨거운 물수건을 다리에 얹어 따뜻하게 감싸 눌러준다. 애잔하리만큼 우형씨의 다리가 앙상하다. 마사지 크림을 바르고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두 사람이 발 마사지를 하는 동안 나는 따뜻한 물수건을 가지고 손을 닦아주러 갔다. 우형씨는 입을 벌리고 눈은 게슴츠레하게 뜬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환자의 입에서 썩은 내가 흘러나온다. 잡은 손에 힘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인데, 어머니는 그래도 희망을 갖나 보다. 발에 난 욕창이 조금 좋아졌다고 미소짓는데 그 모습이 참 안쓰럽다. 마흔 난 자식을 먼저 보내는 늙은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맥이 잡히지 않는 환자의 손을 닦으며 우형씨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걸 알면서도 덤덤하게 일을 해낼 수 있음이 감사하다. 봉사 받을 처지가 아니라 봉사할 수 있음은 더욱 감사하다. 에구, 남의 불행과 비교해서 감사를 느끼는 이 마음은 또 뭔가? 참 얄팍하구나 싶으면서도 그게 나인 것을, 나는 아직 거기까지다.     


  맞은 편에 있는 바오로씨는 57세인데 앉은 채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자기도 마사지 받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이분은 겉으로는 아직 암 환자인지 모를 만큼 쌩쌩하다. 어젯밤에 옆에 있던 환자가 위급한 상태였는지, 밤새도록 삐이 삐 거리는 기계음 소리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며 투덜거렸다.   

  

  “걱정마세요. 이제 마사지하고 나면 오늘 밤은 잠이 자알 올 거예요.”    

 

  넉살 좋은 K언니가 말을 받는다. 다인실엔 4명의 환자가 있어서 마음이 안 맞는 사람이 있거나 누군가 상황이 위급해지면 지내기가 힘들어지나 보다. 그렇지만 나도 이들과 같은 처지가 되면, 다인실을 원할 것 같다. 1인실에서 혼자 서서히 죽어가는 것보다 죽을 때까지 한 방에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고 싶다. 함께 웃기도 하고 불평도 하며 좁은 곳에서 동동거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열심히 손을 움직이면서도 여러 상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무심하게 그저 잠을 못 잤다고 투정하는 바오로씨가 차라리 귀엽다. 마사지를 끝내고 바오로씨와 함께 넷이서 병자를 위한 기도를 마쳤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바오로 씨를 붙잡고 열심히 기도했다. 그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것이기에.


  오늘은 88세인 연자 할머니를 마사지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할머니는 피부암이 심해져서 왼쪽 다리 마사지만 가능했다. 오른쪽은 엄지발가락만 뭉툭하니 나와 있고 나머지는 다 썩어 없어져서 붕대로 감싸 있는데, 혼자 남은 엄지발가락을 보며 마사지하려니, 문둥병 환자 같아 보기에 너무 딱했다. 암이 ‘이렇게 문드러지도록 썩어가게 하는 구나’는 사실을 눈으로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나마 할머니가 약에 취해 누워있는 상태라 자신의 발을 볼 수 없는 게 다행이다.     


  2시간쯤 흘러 마사지를 다 끝내고 햇살방으로 들어갈 무렵이었다. 간호사 한 분이 황급히 그 방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순간, 후회가 가슴을 쳤다.    

 

  ‘아......’      


  허탈하다. 그사이에 돌아가신 것이다. 왜 생각 못 했을까? 죽음이 우릴 기다려주지 않을 거라는 걸! 왜 맨 먼저 그 방에 들어가서 마지막 기도를 드려주지 못했을까? 그 방부터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놈의 손 소독이 뭐라고...... 참 안타깝고도 미안했다. 성당 신자셨으니까,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해주었으면 좋아했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은, 말은 못 해도 끝까지 열려있는 것이 귀라는 데, 소리 맞추어 읊는 기도 소리를 들었다면 떠나는 발걸음이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 


  봉사자 실로 돌아와 우리 생각이 짧았음에 한탄하며 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이승의 무거운 껍질을 벗어버리고 부디 천국으로 훨훨 날아가셨기를, 그분의 영혼이 영원한 안식을 얻었기를!


  죽음 이후는 어떻게 될까? 성당에 다니고 하느님을 믿지만,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알 수 없는 죽음 너머의 세계가 저 ‘햇살’ 방 같기를! 해산의 진통을 겪어야만 아기가 나오듯이 저승으로 가는 여정의 막바지에는 새로운 햇살이 열리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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