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바리우다 Jun 08. 2023

그녀가 해주는 감자떡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낮 11시에 새말에 있는 선산에 도착했다. 선산은 언제 보아도 명당 터이다. 배산임수에다 양지바른 높다란 곳에, 봉긋하게 위치해서 그곳에서 내다보면 나지막한 마을이 안겨 오는 게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게다가 올해는 조상 봉분을 모두 없애고 유골만 모아 각각 납골묘로 만들었기에 선산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녀의 무덤 앞, 남편이 묘지 석 옆에다 호미로 파고 카네이션을 화분 채 심었다. 그리고는 청주를 부어놓고 절을 한다. 나도 한잔 따라 올린다. 나는 담담히 시어머니께 몇 마디 건넸다.     


  “어머니, 저 왔어요. 올해 자리를 새로 마련했는데 어떠신가요? 지금쯤 천국에 계시겠죠? ...... 그래야 하는데 ...... 내년에 다시 올께요.”     


  남편과 함께 카네이션 화분을 들고 선산을 찾아간 것은 그녀의 제삿날이 이즈음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 우리는 미안함을 면피해보려고 궁여지책으로 선산을 찾곤 한다. 게다가 올해는 어디 묻어둔 땅뙈기가 있었는지, 남편이 상속을 받아 팔아서, 형제자매끼리 나눠 가지는 바람에 몇 푼이나마 여행경비도 생겼기에 선산에 가서 감사도 드려야 했다. 


  기도를 끝내고 마지막 눈인사를 나누었다. 빨간 카네이션이 예쁘다. 어버이날이라 고른 것인데, 혹시 시누들이 왔다 가면 무덤에 빨간 꽃 놨다고 뭐라 할까? 뭐라던 간에 나는 신경 안 쓸란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선산을 내려오는데 고사리가 여기저기 피어있다. 아따 그놈의 고사리, 아직은 퍼들어지지 않아서 먹을만하게 생겼다. 나는 욕심이 나서 선산 주변을 돌아다니며 어린 고사리를 꺽었다.


  집에 와서 고사리를 삶고 양념을 해서 무쳤다. 인터넷에서 하라는 대로 했더니 너무 삶아졌는지 맛이 별로 없다. 남편은 굳이 안 먹겠다고 호들갑을 떤다. 흥, 나 혼자 앉아서 주섬주섬 먹으며 그녀 생각에 잠겼다.  

   


  우리 집에 놀러와서 지내던 시어머니가 백혈병임을 알게 된 것은 감기 때문이었다. 종합병원에 입원한 지 한참 되어 더이상 다른 방도가 없게 되자, 큰 동서네가 모셔갔다. 그리고 석 달 지날 즈음, 큰 동서 내외가 집을 비우게 되어 1박 2일로 시어머니를 돌봐드리러 남편과 아기를 데리고 내려갔다. 


  파리한 시어머니가 홀로 어두운 구석진 방에 있으니 참 안돼 보였다. 어머니는 나에게 이것저것 보여주시다가 통장 하나를 꺼내셨다. 통장과 도장을 내미시며 ‘네가 줬던 돈이니 네가 찾아서 쓰라’고 하셨다. 정신이 있을 때 당신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 같아 목이 메었지만, 딸이 아니어서 그런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뒷날, 밥상을 마주했는데 빛이 밝으니 어머니 모습이 분명하게 다가왔다. 늘 깨끗하게 단장했던 시어머니가 비듬이 보이는 머리 카락하며 누리끼리한 게 어딘가 추레했다.    

 

  “어머니 물 뎁혀서 목욕 좀 하실래요? 씻겨 드릴께요”

  “그래”   

  

  작지만 또렷하게 들려오는 대답, 의외였다. 자신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시는 분이 순순히 응하시다니! 목욕탕이 마땅치 않은 집이다. 큰댁에 온 지 3개월이라 힘들었을 것 같아 말이나 해보자고 꺼냈던 터였다. 

    

  큰 다라이에 따뜻하게 물을 받아놓고 금방 바스러질 듯한 어머니를 들여 앉혔다. 물을 끼얹어 가며 수건으로 몸을 덥힌 다음 비누 거품을 내어 목욕을 시켜 드렸다. 앙상하게 마른 몸이라 힘들지 않았고 그저 애잔했다. 목욕물을 치우고 뒷정리를 하는데 옆에서 시어머니가 꿈지럭거리신다. 그게 뭔가 봤더니, 감자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하는 것이었다. 손에 힘이 없을 텐데도 어떻게든 치대어 반죽 덩어리를 만드시더니, 떼어내어 둥글리고 검은콩을 집어넣어 떡을 빚어낸다. 평소 솜씨와는 다르게 두리뭉수리하게 퍼진 감자떡이다. 나는 어머니 옆에 앉아서 채반에 얹어진 하얀 감자떡을 들어 올렸다 놓았다 했다. 목이 잠겨왔다. 당신이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만드는 떡이 그냥 떡만이 아니었기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감자떡이 쪄졌다. 어머니는 꺼내어 쟁반에다 얹어서 내게 내미신다.     


  “먹어봐라. 감자가루가 있어 해봤는데...... 맛있을지, 모르것네.”

  “맛있어요. 어머니......”

     

  사실 뜨거워 그땐 맛을 몰랐지만, 어떻게든 뭘 하나 해주고 싶은 그 마음과 정성이 담겨있음에랴, 그 이상 뭘 바라랴.     


  시간이 지나면 왜 과거는 아름다운가? 그녀와 좋지만은 않았건만 왜 애틋하고 아련할까? 사람은 자신을 미화하고 싶은 욕구가 마음의 저 밑바닥에 깔려 있나 보다. 감자떡은 내가 그녀와 먹었던 마지막 음식이었다. 그날 시어머니와 헤어지며 어머니는 내 손에 남은 감자떡을 싸 주셨다. 나는 또 오겠다고 말을 했는데, 지키지 못했다. 생각보다 일찍이 돌아가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시골 만석꾼의 외동딸로 태어나 6.25전인 그 옛날에도 소고기를 먹고, 자기 혼자 예쁜 수건을 쓰며 고이 자랐다. 그러다 시집을 잘못 가서 고생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내게 스스럼없이 터놓을 때까지는 함께 산 지 1년이 넘을 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시아버지가 바람피워서 맘고생을 많이 했는데 늘그막까지 시앗이 들어와 사는 바람에 여기저기 떠도는 신세가 되어야 했었다. 내가 원치 않았음에도, 시어머니와 함께 부대끼며 7년을 살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나 보다.     


  고사리 무침을 씹다가 남은 청주가 있어 한잔하였다. 쌉쌀하면서도 달달한게 마음에 든다. 야금야금 청주를 마시다 생각한다.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감자떡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그것도 그녀가 해주는 감자떡을!


작가의 이전글 햇살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