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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un 23. 2023

그랩에서 퇴출되었습니다

   선과 미와 나, 은퇴한 세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다. 두 사람은 자유여행이 처음이다. 우리는 두 번이나 모여서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하고 여행 경로를 짜느라, 다낭을 가보기도 전에 이미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드디어 다낭 공항에 도착, 핸드폰을 켰다. 그런데 한국에서 산 심 카드가 문제인지 작동을 않는다. 뺐다 넣었다, 껐다 켜기를 여러 번, 할 수 없이 공항 안에서 10달러를 주고 유심을 다시 샀다. 그 덕분에 판매원이 한국에서 깐 그랩과 잘 연동시켜 주었다. 그랩을 눌러 호텔을 설정하니 10만동짜리 택시가 뜬다.


 아싸, 성공이구나. 얼른 호출했다.


  우리가 부른 택시는 30분쯤 기다려서야 느지막이 도착했고 다낭 공항을 빠져나가는 데도 모든 차가 주차비를 내느라 오래 걸렸다. 그랩 담당인 나는 운전석 옆에 앉아서 낯선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폰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가 도로를 한참 달리는데도 내 폰의 네비게이션이 움직이지 않는다. 밤 12시가 훨씬 넘는 시각인데, 어쩌지? 야밤에 이 택시가 다른 데로 가버려도 알 수 없지 않나? 갑자기 두려움이 확 밀어닥쳤다. 나는 긴장돼서 뒤에 앉아 편안히 소곤거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네비 좀 켜봐요. 내 폰이 작동하질 않네!”


  잠시 후 차가 다리를 건너기 시작한다. 오, 다리... 미케비치 해변으로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하지. 음, 제대로 가나 보다. 역시 여행경로를 짜면서 봤던 게 도움이 되는군.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그랩의 위치가 그제야 빠르게 전환된다. 드디어 목적지가 나타났다. 사라다낭 비치호텔, 그 글자가 얼마나 반갑던지!     


  아침 7시에 조식을 먹고 그날은 빨리 돌아와 쉬기로 했다. 영흥사와 참 박물관, 핑크 성당, 한 시장이 코스였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그랩을 불러 영흥사로 향했다. 영흥사로 가는 도중에 그랩 운전사가 자꾸 말을 건다. 왕복 요금을 부르며 싸게 해주겠단다. 선이 흥정을 잘해서 그 차로 영흥사를 왕복하기로 했다.


 영흥사에 도착하자, 운전사는 내 폰을 달라더니 이것저것을 눌러 그랩 호출을 취소한다. 어라, 손이 빨라서 어디에서 어디로 넘어가는지 알 수 없다. 예전엔 나도 기계치가 아니었건만, 지금은 어찌할 수가 없다.


  영흥사 해수관음상에서 바라다보니 멀리 바다가 보인다. 바다는 저렇게 무엇이나 다 담을 듯 평온하건만, 나는 아직 그랩 사용 방법을 다 소화하지 못한 것 같아, 속으로 영 떨떠름했다. 한국에서 카카오 택시도 이용해보지 않은 내가, 괜히 그랩 호출을 떠맡았나 보다. 나도 못 한다고 그냥 밀어버릴걸.


 영흥사 구경을 마치고 차에 타기 전, 내일 가야 할 장소의 요금을 알아보려고 다시 그랩을 켜고 호텔서 목적지(오행산)까지 진로를 설정했다. 아뿔싸 어쩐 일인가? 호출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픽업해줄 운전사가 화면에 떠올랐다. 이걸 어떻게 해야 취소를 하지? 버벅대다가 갈 수 없다고 메시지를 쓰고 있는데 상대 운전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쏘리~~~ 아이 켄트 라이드 인 유어 카... ”     

  

되는대로 지껄이고 전화를 끊었다. 서둘러 기다리던 운전사에게 가서 취소가 제대로 되었는지 봐달라고 했더니 싸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도움으로 그랩 호출을 취소하고 참 박물관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다시 흥정이 이루어져 다음 날도 같은 차로 오행산을 가기로 했다.

  

  참 박물관엔 참파 왕국의 조각 예술품이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참 박물관 구경 후 근처에 있는 베트남 식당(벱꿰)을 찾아가서 음식을 시켰다. 잘 익혀볼 겸 다시 그랩을 켜는데, 어라 이게 웬일인가? 그랩이 로그 아웃 상태이다. 다시 싸인 업 해야 한단다. 근데 구글 비번이 생각나질 않는다. 뭐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좀 전까진 두 개의 요금이 홀드 되어있는 것만 봤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어 계산대에 있는 아가씨가 한가해진 틈을 타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는 이것저것 눌러보더니 베트남 폰번호가 있어야 한단다. 근데 그 번호는 호텔에 있으니 그저 난감할 뿐이었다. 이따 호텔로 돌아갈 그랩을 부르려면 내 폰이 작동해야 하는데, 이걸 어쩌지? 자유여행을 다녀 봤다고 내게 그랩을 맡겼는데, 어쩌면 나 때문에 걸어서 호텔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선과 미는 모닝글로리랑 스프링롤이 맛있다고 짭짭거리며 활짝 웃는데, 함께 먹으며 맞장구를 치면서도 나는 맛을 잘 느낄 수 없었다.     


  

  벱꿰에서 나와 핑크 성당을 구경하고 근처에 있는 한 시장에 들러 두 사람이 옷을 고르며 즐거워하는 동안에도, 나는 오로지 내 그랩은 왜 그렇게 셧다운 되었을까? 앞으로 어찌해야 할까? 그 생각뿐이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무료로 호텔까지 차를 운행하는 마사지 샵을 골라 마사지를 받았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베트남 폰번호로 연결해 봤다. 메시지가 떴다.    

 

  ‘그랩에서 퇴출되었습니다.’


  아, 2번의 취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나 보다. 어쨌든 적어도 5일 동안은 그랩을 사용할 수 없다. 5일이면 이미 한국으로 돌아간 때다. 그러니까 발버둥 쳐봐야 다낭에서 나의 그랩은 끝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겁게 눌렀던 마음의 짐이 다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랩이 없어도 필요한 딜을 할 택시 운전사가 아직 있으니까! 사람은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거지, 어떤 결정이든지 일단 되고 나면 이렇게 홀가분한 걸까? 갑자기 쓴웃음이 나왔다. 쓸데없는 욕심으로 요금을 저울질하다, 그랩에서 아웃되었다. 절약한답시고 그 몇 푼에 여행의 즐거움을 놓치다니!     


  저녁을 먹고 근처에 있는 미케비치 해변으로 나갔다. 게슴츠레했던 눈이 맑아지며 바다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쪼리를 벗고 모래를 밟는데, 발가락 사이로 연신 끼어드는 모래가 나에게 장난을 거는 것 같다. 그 감촉이 즐겁다. 그제야 여행 온 기분이 났다. 바닷물결이 찰랑찰랑 쳐오고 우리는 손잡고 해변을 걷다가 근처 포장마차에 들어가 데낄라를 시켰다. 난생처음으로 마셔보는 데낄라의 소금 맛이 날카롭게 다가왔다. 그랩처럼 생소한 맛이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우리는 그랩 대신 택시 운전사와 딜을 하며 즐거이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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