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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Apr 15. 2021

미친 장 닭

  막내 언니가 학교 갔다 오는 길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갑자기 장 닭이 언니에게로 날아가더니 언니를 향해 달려들었다. 언니는 울며불며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대문 옆이 닭장이라 이놈이 왕 노릇을 하다가 언니를 훼방꾼으로 여겼는지, 장 닭의 마음을 도무지 알 도리는 없건만, 그놈이 미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 넓은 마당은 흙으로 덮여 있었고 마당 옆 우영팥(텃밭) 한 귀퉁이에 닭들을 키우고 있었다. 닭들이 알을 낳아 꼬꼬댁거리면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달려가 달걀을 들고 오기도 했는데 어떨 때는 너무 빨리 닭장에 가는 바람에 아직도 물렁물렁하고 따듯한 달걀이 손에 잡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닭들이 마당을 돌아다니며 머리를 집어넣었다 뺐다 하면서 무얼 쪼아먹거나 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특히나 지네를 잡아먹을 때 쪼아서 휘두르다 재치는 행동은 흥미롭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장날에 실한 장 닭을 사 오셨다. 그러다 갑자기 그 장 닭이란 놈이 막내 언니를 공격하면서부터 우리는 그놈을 두려워했다.


  어느 날 나와 막내 언니, 그리고 셋째 언니가 함께 밖에서 놀다가 들어올 때였다.  장 닭이 두려운 우리는 대문 틈으로 살짝 들여다보고 대응하기로 했다. 셋째인 사라 언니가 대문을 빼꼼히 열고 닭장 쪽을 바라다보았다. 


  “야, 장 닭이 어싱게(없네)”


우리는 이때다 싶어 모두 함께 대문을 들어섰다. 그런데 그놈이 기와지붕 위에 올라앉아서는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엄마야”


  장 닭을 본 우리는 너무나 놀라서 엉겁결에 흩어졌다. 장 닭은 기세 좋게 푸드덕하고 내려오더니 막내인 니나 언니에게만 달려들어 머리 위에 앉아서 정수리를 쪼아 대었다. 언니는 혼비백산해서 울면서 주저앉았고 셋째 언니가 장대를 들어 그놈을 쫓아냈다. 이렇게 장 닭은 희한하게도 번번이 막내 언니만 골라서 괴롭혔다. 


  그래도 어머니가 쉽사리 그 닭을 없앨 수 없었던 데는 씨암탉과 교미를 하도록 해서 닭들을 늘릴 요량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행동에 더하여 장 닭은 한밤중에 기와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꼬꼬댁하고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 그 꼴을 보았다. 


  “거, 장 닭에 귀신붙었수다. 잡아붑서게”

    

  이웃이 불길하다는 소리에 장 닭은 닭털이 뽑히는 신세가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고기도 먹고 다시 마당에서 즐겁게 놀았다. 그러다 가끔 무슨 소리가 들리면 장 닭이 푸드덕하니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더이상 장 닭을 사오지 않았다.


  문제는 그 후부터였다. 막내 언니가 시름시름 앓아누웠다. 동네 약방 아저씨의 권유로 언니는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거기서도 고칠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어머니는 목포에 있는 성 골롬바 병원에 언니를 입원시켰다. 그때 남동생이 4살, 나는 7살, 셋째 언니는 12살, 둘째 언니는 15살이어서 집에는 어른이 없었다. 첫째 언니는 시에서 고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어머니는 막내 언니만 병원에 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열흘쯤 지나서 어머니는 언니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았다. 그때만 해도 전화는 없었고 급한 일은 전보로 연락을 받을 때였다. 어머니는 황급히 다시 목포행 여객선을 타고 가셨다. 당시만 하더라도 배가 취약해서 멀미도 심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던 때였다. 어머니는 언니를 잃은 슬픔에 황망하기만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해보니 언니는 살아있었다. 그 옆에 있던 동갑내기 어린이가 같은 병으로 죽은 것을 잘 못 알린 것이었다. 


  약에 대한 부작용 때문인지 막내 언니는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돌아왔다. 그런데 얼굴만 변한 게 아니었다. 언니가 쌀쌀맞고 퉁명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언니가 또 아플까 봐 무슨 일이 생길 때면 ‘니나는 건들지 말라’고 당부하며 특별 대우를 하셨다. 그 때문에 심부름을 하거나 땔감을 해오거나 논밭 일을 하는 데서도 막내 언니만큼은 예외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우리 둘에게 청소를 시키고 밭으로 일하러 가셨다. 

  “내가 방청소를 할 테니, 너는 마루 청소해”


  막내 언니가 내게 강짜를 부렸다. 당시 우리 집 마루는 다른 집과 달리 유난히 넓었다. 어린 내가 마루를 닦으려면 쪽 무늬를 맞추어서 엉덩이를 올리고 두 팔을 걸레에 대고 두 다리로 밀며 달려도 한 참 걸렸다.

  나는 싫다고 맞받아쳤다. 말싸움이 본격적인 몸싸움으로 번졌다. 언니는 내 배 위에 올라타서는 양손의 검지로 내 머리카락을 비비 꼬아서 잡아당겼다. 나는 너무나 아파 울면서 속으로 복수를 다짐했다.     


  그때는 내가 언니에게 당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열흘이 넘도록 엄마 없이 혼자 병원에 남겨졌던 것이 어린 애한테는 참 고통스런 경험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자기와 비슷한 또래가 바로 옆에서 죽는다면야!


   결국, 미친 닭이 일으킨 피해는 언니를 거쳐 나에게 왔다. 나비 효과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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